saem news -- 샘문학상 수상작 연제 스토리
【제 1회】 우수상 입상작
하얀 색상은 잃어버린 느낌을 만질 수 없다 꺼져가는 기억의 잔해가 바위에 걸쳤다 사라져 간 바람의 색깔은 투명이어서 쉬어가지 못함도 보이는 사물의 끈적임 때문이다 끈적임을 인연이라 한다면 한 톨의 씨앗도 홀로이지 않아서 끈은 끈으로 옭아맨 연줄이 되었다 향기 품은 연기처럼 길을 간 올라감에도 바람은 솔깃하지 않았다 순리에 피어난 고리가 되는 잠깐이란 말 속에 바람은 버걱거리는 소음에 묻어간다 인연이란 웃음을 놓고 가지 않아서 멀어져 간 별리의 속성에 두드림은 끝이 없다 두드려도 대지에 남긴 언덕위에 그리움을 던지고 잡은 손 풀어짐에 이슬을 머금는다 굴러간 낙엽은 간다는 눈짓도 없이 -------
[시] 하루의 서랍 / 황선양 시인
그렇게 오전 오후의 생존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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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여우비 / 전양우 시인
천지에 붙은 불이 내 몸을 태우고 말았네 그대는 날 보는 것이오 불붙은 강을 건널까나 --------
[시] 단비 / 오애숙 시인
가뭄에 논 쩍쩍 갈라져 자라 등처럼 하늘 창에 살포시 한조각 매지구름 채마밭 보약 마시더니 -------
[시] 기찻길 옆 / 이금자 시인
무거운 짐칸 백여 개 달고 힘겨워 토해내는 ------- ------------
【제 2회】 우수상 입상작
피워 허공 날던 향 구름 매화는 꽃 피우려 -------
[시] 꽃들의 전쟁 / 이세진 시인
거미줄 같은 바람 한 줄기 걸음 멈추고 떨리는 몸 --------
[시] 청산에 살고지고 / 염동규 시인
심오한 별빛은 바람결에 흩어지고 고독을 저 멀리 별빛 내리고 달물 촉촉이 --------
[시] 굽은 길이 좋아라 / 조기홍 시인
곧은 길 보다 굽은 길이 더 좋은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생각대로 계절이 수없이 바뀌며 단말마 같은 아, 사랑이여 오라 -------
[시조] 村夫夢(촌부의 꿈) / 김동철 시조시인
艾婦悽然無價穀 (부녀자는 곡식 값없음에 구슬프고) 天涯冷氣嚴冬沍 (하늘까지 차가운 날씨 혹독히 얼어붙어도) 收穫大豐家計苦 (풍년에도 수지 안 맞아 살림살이 힘들지만) --------
[시] 풀빛소리 / 허대성 시인
당신을 만난 인연은 축복입니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살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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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우수상 입상작
[시] 할매의 넋두리 / 강성범 시인
삽시간에 냇물은 넘쳐나 긍게, 큰 아그 대학 학자금 밑천으로 불 구경 보다 물 구경이 더 재미난다고 둥둥둥 떠내려가는 근디야 암만 생각혀봐도 --------
[시] 퇴근길 / 김종국 시인
고단한 육신의 무게보다 자박자박 쫓아오는 삶의 끝자락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리며 --------
[시] 육학년 방학 / 정종복 시인
한 세월 쏜살같이 지나고 산굽이 돌고 냇가를 건너면서 푸른 산을 부르고 바다를 부르고 --------
[시조] 원이 엄마 / 권태인 시조시인
동짓달 긴긴 밤에 당신이 그리울 땐
당신을 닮아가는 원이를 볼 때마다 --------
[수필] 비 오는 날 남편의 빈자리 / 김춘자 수필가
툭툭 타닥타닥 아스팔트 위에 소낙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소리에 창밖을 넘어다본다. 검은 구름이 머리위로 가득 차일을 친 것처럼 덥혀 있다. 이제 겨우 오후 네 시인데 목욕탕 입구부터 계단을 넘실대며 어둠이 찾아왔다. 슬며시 겁이 났다.
비 오는 밤이 무서운 게 아니고 사람이 무서웠다. 친구가 가을배추 모종도 심고 무도 심었다고 했는데 소낙비로 다시 심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리 밑 웅덩이에 잉어들이 노닐었는데 물길따라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참 걱정도 팔자다. 어디든 물길 닿는 곳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특권이 있기는 해도 사람처럼 정든 곳이 좋지 않을까 싶다. 가경천 물길 가운데 가끔 자라들이 햇볕을 쬐던 커다란 바위가 있다. 자라들도 불어난 빗물에 떠내려갔을 것이다. 어디든 바위가 있는 곳에 안착했으면 좋겠다.
영업이 끝났다고 해도 비오는 데 여기까지 왔는데 목욕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층 남탕으로 안내했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기 위해 출입구를 잠그고 카운터에 앉아 TV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어깨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는 남편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늘 남편이 4시부터 목욕탕을 보고 정리하고는 9시가 되어 돌아왔다.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목에 걸려 한 번도 못했다. 40년 공직생활을 정년퇴직한 후에도 내가 일을 계속 했으니 집이 휑하니 외로웠겠다. 지인과 함께 밭에 풀도 메고 정원도 가꾸고 논에 물고를 보면서 세월을 낚았다. 목욕탕을 도와주는 동생을 집에 일찍 보내고 남편이 남은 시간을 메꾸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 나처럼 남편도 무서웠을까? 남편은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을 대령하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처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 --------
[시] 되돌이표 / 최용대 시인
하늘 흰 구름 두둥실 떠가는 모습 아침 세상은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바람에 흔들리는 흰 커튼 사이로 하늘은 회색빛 계절은 하얀 도화지처럼 지루함도 잊은 듯 여름은 그렇게 먼 길을 떠난다 해도 --------
[시] 가을 이야기 / 고금석 시인
은행나무는 남몰래 사랑하여 감나무 불 지피던 홍엽 다 떠나고 -------
[시] 봄바람 난 년들 / 권나현 시인
고초당초 보담 더 매운 아이고, 말도 마소 키빼기만 삐쩡 큰 목련부터 워째야 쓰까이 그려 어쩔 수 없는 것이제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께 --------- ---------------
[시] 청춘 소곡(靑春小曲) / 조기홍 시인
푸르던 나뭇잎도 어느새 지나간 청춘도 화살처럼 빨라 메마른 갈대숲의 가슴 하얀 산토끼는 그래도 돌아보는 애락(愛樂)과 풍류 속에 세상살이 변하지 않는 -------
[시] 울산바위 / 송청락 시인
긴긴 세월을 대지에 숨어들어 하늘 향해 고하듯 백두대간 틀어쥐고 --------
[시] 초겨울의 기도 / 이종식 시인
이웃을 돌보기보다 내 살기 바쁘니 어쩌랴 세상 살기 어려워 소외된 울고 싶은 사람들 첫눈 내리면 구석구석 깨끗한 마음들 -------- --------------
[시] 기억의 힘 / 이소월 시인
고된 전쟁살이 천대받고 짓밟혀도 이십칠 년 동안 이어진 꽃처럼 어여쁜 열다섯 살 꽃보다 나비 되어 -------
중후한 갯바위 신사처럼 이제는 그리움도 사랑도 지워야할 --------
행복은 잡히지 않아도 살아 갈수록 삶은 자기 그림자를 평생 끌고 가는 길이다 끝없는 목마름 -------
[시] 선악과(善惡果) 이야기 / 박수연 시인
키는 하늘에 닿고 하나 둘 사람들은 붉은 선악과 저마다 굽은 잣대로 이후로 평화롭던 마을은 눈만 뜨면 왜 심었을까? -------
[시] 엄니의 포대기 / 박지수 시인
많이, 아주 많이 힘이 들어 얼마나 부르셨을까 생의 마지막 경계에서 다시 부른다 아버지가 넘으시는 고갯길 --------
붓 대공에 힘주면 꽃잎에 머무는 나의 간절한 기도 -------
[시] 퇴계 이 황 & 어머니 / 안승기 시인
율곡 선생의 뒤에는 아이들이 점점 커가자 퇴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퇴계는 어머니의 훈계를 명심하여 듣고 그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 시킬 때 퇴계 그는 자연시 매화시 애민시 인사시 ------
[수필] 달아난 은비녀 / 남미숙 수필가
초등학교 졸업에 일본어도 곧잘 구사하는 신여성 그녀가 엄마였다. 엄마가 가르쳐준 그림일기 쓰기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그림도 참 잘 그리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밖으로 돌며 풍류를 즐기셨고 엄마 속을 무지 썩였다고 큰 언니가 언젠가 말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의 입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늘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지만 한숨이 묻어 있었다. 긴 한숨으로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와의 핑크빛무드의 세월을 토해냈다.
“엄마” 하고 입속으로 불러보면 정갈하게 빗어 넘긴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 내 마음에 파고든다. 눈 뜬 아침이면 작은 경(鏡)을 꺼내시고는 끝이 뾰족한 빗으로 가르마를 가르고 곱게 빗질을 한 다음 왼손 중앙에 한 방울 동백기름 떨어뜨려 두 손으로 비벼 가르마 아래로 곱게 손으로 빗질을 했다. 어쩌면 엄마는 아침마다 객지 나간 오빠들 생각하며 옆에 빤히 보고 있는 막둥이 생각하며 쓸어내렸을 것이다.
거친 손끝에는 엄마의 고달픈 숱한 나날이 들락거린 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듯 등이 가려우면 엄마의 손은 지금 나무로 만든 효자손보다 시원했다. 주부습진이니 뭐니 하면서 병원을 들락거리는 호사를 누리지만 나는 맨손을 좋아한다. 엄마의 정이 그리워서일까? 나는 가끔 남편의 등을 긁어주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선물한 열 돈짜리 은비녀다. 머리를 다듬을 때마다 한참을 들여다보는 은비녀. 잠자리에 들 때는 얼마나 소중했으면 하얀 보자기에 싸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곤 했다. 아마도 오빠를 맞이하는 것처럼 그 윽한 미소는 은비녀를 더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은비녀가 엄마에게 오기 전에는 늘 청자빛 도는 옥비녀가 전부였다.
장에 가져갈 물건을 광주리에 가득 채워 놓고 머리를 손질하던 엄마 옆에 다소곳하게 놓인 비녀. 난 신기한 그 물건을 볼 때마다 호기심이 발동해 엄마가 머리를 고르는 동안에 장난감처럼 엄마도 찔러보고 내 손바닥도 꾹꾹 눌러보고 손으로 구슬을 굴리듯 굴려도 보고 짧은 내 머리를 돌돌 말아 끼워보기도 하며 엄마의 사랑을 가지고 놀았다. 순간, 머리에 끼워놓은 비녀가 툭하고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나버렸다. 아버지의 유품처럼 잃어버릴까봐 비녀머리 쪽에는 실 같은 것을 매달아 함께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가슴으로 토해내는 긴 호흡을 하면서 나를 야단치기 보다는 시장에 가야하는 일이 걱정인 것 같았다.
비녀 대신 머리에 꼽고 시장에 가셨다. 그래도 참 예쁜 엄마였다. 가슴으로 담고 있던 옥비녀가 사라진 다음에는 오빠의 사랑이 엄마와 함께 늘 동행했다. 은비녀를 꼽고 부터는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속력을 다하여 달려갔다. 엄마는 보이지 않고 싸늘한 냉동고에 들어갔다고 했다. 난 한여름에 나의 모세혈관 하나하나가 다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주변에서는 “뺑소니래?” 하면서 그리고 또 뒤따르던 오토바이가 또 치었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웅성거렸고 머리 수술하였다는데 평생을 기른 머리를 잘라 다 밀어버렸다고 했다. 염을 할 때도 난 엄마를 보지 못했다. 미신인지 모르지만 염을 하는 분이 그날의 운이 안 맞아 보지 말라고 했다.
자식 일곱을 키우시면서 베갯모에 흘린 눈물 바쁘다는 핑계로 생일이나 어머니날이면 작은 선물 하나로 내 마음 편하자고만 산 날들, 난 돌아앉아 통곡했다.
당신을 생각하면 두 눈 가득 눈물로 가득인데 늘 엄마는 그랬다. 언제나 엄마인걸로만 알고 진정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도 엄마는 그대로 인줄만 알고 살았다. 너무 갑자기 떠나시는 바람에 자식에게 할 말이라도 하려는지 엄마가 꿈속에서 비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비녀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자식을 찾고 계셨을까? 생각해본다. 부르다가 말문까지 막혀버렸는지 나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한숨을 토해내듯 깨어났다. 난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 눈을 뜨면서 오빠에게 물었다.
사고로 달아난 것이었다. 엄마는 그랬다. 죽으면서도 분신처럼 달고 다니던 비녀, 먼 나라에 가서 머리를 길어 비녀를 꼽고 다니시려는지. 사고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엄마는 정정하게 살아계셨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총기를 지니고 산 우리 엄마. 남씨 집안에 명이 다 짧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친척이 거의 없었다. 어른들이 살아계셔야 왕래가 잦아지는데 단명을 하셔 친척 간에도 서로 모르고 사셨다. 그런데 그 때도 엄마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파마하라고, 귀찮게 숱도 없으면서 매일 지극 정성이라며 엄마에게 온갖 달콤한 말로 엄마를 미장원 가자고 해도, 엄마는 평생을 고집한 쪽진 머리를 하고 사셨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으로 밀려 올라오는 그립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눈물로 가슴을 채울까봐서 흘러가는 노을진 강둑에 서서 혼자 가만히 엄마를 불러본다.
어머니 시대엔 남편보다 자식에게 더 의지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세대까지는 보모님과의 사랑이 지극한지도‧‧‧‧‧‧ --------
【제 5회】 특별작품상 입상작
[시] 다선 / 이세송 시인
어디선가 고운 향기 찾아 걸터 수니 미풍 일어나 도량 서성거리고 노승 다실(茶室)에 혼자 앉아 -------
[시] 봄에 나를 묻고 / 강은주 시인
하얀 손수건에 붉게 수놓은 사연 삭풍(朔風)은 자목련 치맛자락에 누워 흥건히 젖은 베갯머리 비린내 봄이 미쳐간다 -------
모질게도 차가운 삭풍(朔風) 겨울은 뼈마디가 굳어 삐걱거리는데 찬 공기 대밭처럼 빼곡히 진을 친 아낌없이 몸 보시하고 떠나는 ---------
자잘한 나비 새끼들은 무리지어 강가를 수놓고 있습니다. 갓 부화된 비오리 새끼들의 아장거림에 어미 비오리는 그저 애만 탑니다. 어미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자기 새끼를 부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여울소리가 파르르 떨며 초여름에 메아리칩니다. 여울을 가로지르는 무자치의 파문이 그대로 여울 끝으로 굴러 내려갑니다. 또 다시 비가 한바탕 시작될까요? 이곳저곳에서 뭉게구름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만 더욱 높습니다.
물살에 떠 내려 온 나뭇가지가 힘에 벅찬 모양입니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버리고 한참 후에 돌아온 꺽지는, 다시 배를 뒤집어서 돌 천장을 지느러미로 부채질 하듯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리고는 집 앞에 떡 버티고 서서 등지느러미를 곧추 세우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꺽지는 서로의 꼬리 지느러미를 잡으려는 듯 빙빙 달무리를 섭니다. 사랑을 나누는 가 봅니다. 잠시 후 암컷이 잘 닦아놓은 돌 천장에 배를 붙이더니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뽕글뽕글 수정 알처럼, 다롱다롱 이슬방울처럼 꺽지 알들은 돌 천장에 하나씩 붙어 갑니다. 수컷 꺽지가 정액을 뿌려댑니다. 아빠 꺽지가 되는 순간입니다.
돌 천장에 반만 붙어 있는 알들이 영 못마땅 한가 봅니다. 다시 집 앞에 내려오더니 아가미를 크게 폈다 오므렸다 하며 암컷을 유혹 합니다. 잠시 후 암컷이 또 나타납니다. 암컷은 반 남은 돌 천장을 마저 채우고 느릿느릿 된여울 속으로 돌아갑니다. 아빠 꺽지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돌 천장에 빼곡이 붙어 있는 알들에게 지느러미로 부채질해서 산소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가슴지느러미로 알들을 가끔씩 뒤집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알을 탐내는 돌고기, 납자루, 갈겨니도 저지해야 합니다.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마냥 뿌듯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저 앞에서 메기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아빠 꺽자 보다 훨씬 더 큰 메기입니다. 아빠 꺽지는 큰 메기가 무섭지 않은가 봅니다. 등가시를 날렵하게 세우더니 곧장 메기에게로 달려갑니다. 들이받을 듯, 메기의 수염을 잡아챌 듯 말입니다. 그러자 메기는 도망쳐 달아납니다. 아빠 꺽지의 승리입니다. 크기는 아빠 꺽지와 엇비슷하지만 얼룩동사리에게 한 번 물리면 끝이라는 걸 아빠 꺽지는 알고 있을까요? 그러나 아빠 꺽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시를 세우고 아가미를 벌리고 입을 뿌역뿌역 두세 번 하니까 얼룩동사리는 슬그머니 꼬리를 빼고 달아납니다. 이번에도 아빠 꺽지의 승리입니다. 돌 천장에 매달린 자식들 앞에서 아빠 꺽지는 의기양양합니다.
알들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이쪽 저쪽 왔다 갔다 하며 알들을 차례로 한 바퀴씩 굴려줍니다. 돌 천장위에 ‘툭’하는 소리가 나더니 허리가 굽은 은색을 띤 녀석이 바닥에 툭 떨어집니다. 저 녀석이 무엇일까요? 이상하게 생긴 녀석을 아빠 꺽지는 한동안 응시 합니다. 허리가 굽은 이상하게 생긴 녀석은 그런 아빠 꺽지가 무서웠나 봅니다. 홀짝홀짝 몸을 튕기면서, 그리고 하나뿐인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이상하게 생긴 녀석을 쫓아 보낸 후, 잠시 평화가 있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또 무엇일까요? 날개를 팔랑팔랑 돌리는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바위 밑으로 뚝 떨어지더니 다시 날개를 팔랑팔랑 돌리며 사라집니다. 이런 녀석, 아빠에게는 큰 유혹이지만 아빠 꺽지는 잘도 꾹 참아냅니다.
메기와 얼룩동사리 까지 쫓아버린 아빠 꺽지가 왜 보이지 않았을까요? 자식들 앞에서는 가장 멋진, 가장 용감한 아빠 꺽지였는데 말입니다. 며칠 전에 나타난, 머리는 둥글고 등에는 가시를 하나 달고, 몸은 흐물거리는 녀석 때문이었나 봅니다. 돌 천장에 떨어지는 그 녀석을 처음에는 못 본 척 했지만, 연거푸 집 앞에 떨어지는 그 녀석에 대해, 자식들을 위협하는 위험 대상으로 여겼나 봅니다. 그리고는 힘껏 당겼습니다. 그러나 그 녀석의 힘은 의외로 강했습니다. 아빠 꺽지는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딘가를 향해 질질 끌려갔습니다. 저항은 했지만 아빠 꺽지의 저항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돌 천장에 붙어있던 꺽지 알들은 하나둘씩 썩어 갔습니다. 짙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saem news>
취재본부장 오연복 기자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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