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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문학상(본상) 역대최우수상수상작
【제 1회】 최우수상 입상작
오고 가는 소리에 바람소리가 업힌다 그 여름, 추녀를 달래던 낙숫물의 노래 나이 한 살 많다고 한 살 적다고 계절 행사로 치루는 동네 부역 저나 나나 다 같은 잡풀이면서‧‧‧‧‧‧ -------
[시조] 열애(熱愛) / 허기원 시조시인 그대의 달콤한 향기 속에 입가의 예쁜 미소 가득 채워 세월의 물빛 따라 끝없이 흐르다가 ---------
연말이라 서랍정리를 하면서 눈에 띄었다. “Brookings Daily Register” 첫 면이다. 1978년 5월 8일 자로 ‘나와 아들’을 근접 촬영한 4단 크기의 사진기사가 실려 있다.
굵은 돋움[Gothic]체로 제목을 붙인 졸업식 광경이다. 나는 학사 가운을 입고 사각모자를 쓰고 넓은 강당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아들이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달려와서 학사모(學士帽)에 달린 술[tassel]을 만지고 있는 사진이다. 약 850명의 South Dakota 주립대학 졸업식에 약학대학을 졸업하는, 32살 먹은 아버지와 그를 따라 온 6살짜리 아들과 만남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1975년, 3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약사 이민으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영주권을 받고 LA에 도착하였지만, 현지 사정은 상상과는 달리 만만치 않았다. 다른 의료인들은 이민 허가 조건으로 직장을 계약하고 왔으며, 그들에게는 면허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약사에게는 취업을 요구하는 조건이 없어서 이민 절차는 쉬웠지만 현지에서 약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당시는 면허시험을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며 미국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하여야만 약사 면허시험을 볼 수 있었다.
비타민 회사 ‘공돌이’ 자동차 브레이크 회사 ‘검사관(?)’ 등등을 거치며,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달 보기 운동’을 하며 달렸다. 그래도 한 손에 너덜너덜한 단어장을 놓지 않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토끼잠을 잔 덕분에, 토플시험을 거쳐 미 전역의 약학대학 100여 곳에 입학원서를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한 일 년이 지났다. 그 정황에 태어난 딸이 복을 가져왔는지 채 백일도 되기 전에 South Dakota 주립대학으로부터 편입 허락을 받았다.
일념만으로 시험 준비에 바빴지만, 막상 입학 통지를 받고 보니 경제적으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세 식구가 $1,800을 갖고 이민 와서 그동안 시간당 2~3불의 임금으로 늦은 시간까지 일하며 시간외 수당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지만 잔고는 거의 바닥이었다. 혼자서 발버둥 치며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서울에서 고학으로 4년 대학을 마친 저력이 있어서, 혼자라면 어떻게든 공부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뿐‧‧‧‧‧‧. 하여, 두 아이를 한국에 보낼 계획까지 세웠으나, 비행기 표 비용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특산품, 개인 소장품 등등을 친구들에게 팔았고, 그들은 십시일반으로 여비까지 보태주었다. 아직 산후 건강이 회복되지도 않은 아내와 아이 둘을 LA에 남겨두고 그 곳 사정도 알아볼 겸, 일단 혼자서 South Dakota로 날아갔다. 다행히도 정부가 제공하는 그랜트를 신청할 수 있었고 은행에서 학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허름하고 침침한 지하 단칸방에서, 사과 한 알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둘이 손잡고 서로 쳐다보며 딸의 백일을 축하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아버지가 33살이었으니, 사진속의 나와 거의 같은 나이이다. 내가 수석으로 졸업하였다고, 졸업식 후에 교직원 모두를 초대하여 식당에서 음식대접을 하며 술기운이 올라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당신의 모습이 새롭다. 당시의 집안사정으로 보아 어디서 돈을 빌려서 대접하였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신은 현실을 모르고 어처구니없는 과용을 했을까. ‘지금’을 누릴 줄 아는 삶을 그때 내가 깨우쳤더라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고 자신에게 변명하며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던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을 받느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었고, 잠자는 얼굴 잠깐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버지 노릇을 한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죄스럽기만 하다. 그 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도 “나중에 더 크게”를 반복하며 직장 일에만 충실했다. 가정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하는 것만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인 줄로 알고 살았다. 딸의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무거운 짐을 느끼면서도‧‧‧‧‧‧.
이 사진을 보여주며 겸연쩍은 얼굴로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사진에 6살이던 그가 벌써 44살을 넘어 중년 티가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다. 자주 야간 근무를 하는 바쁜 생활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12살 된 아들과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다. 녀석은, 야구반에서 홈런을 치던 일, 고사리 손으로 월척을 잡던 일, 캠핑 가서 곰을 만나 놀랐던 일, 스 키장에서 나동그라진 일 등등 아빠와 함께했던 일을 추억하며 깔깔대며 내게 자랑한다. 오늘, 지금 아빠와 함께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이 순간이 곧 내일의 시작이 아니더냐?” 하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 -----------
시간이란 우주의 형상이 저럴거다 크로노스의 크로노스 우주에 가득한 생명들 스르륵 아무 기미도 없이 별빛이 영롱한 밤에 -------
[시] 소금 꽃 전시회 / 김 단 시인
두어 평 남짓 좁은 공간에선 찰랑찰랑 --------
[시조] 동지 산행 / 차용국 시조시인
술 없는 연말모임 할 수도 있을 텐데 동짓날 비가 내려 산길은 촉촉하고 해동의 기운이야 더 없이 반갑다만 승가사 도착해서 물 한 잔 부탁하니 한 사발 붉은 팥죽도 나누면 넉넉한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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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뚝배기, 김 모락모락 나는 그래 그래 육십 넘은 애비 이 맛 들려 나 어릴 적, 울 아버지 술 거나하면 나는 오늘도 또 다시 무엇인가를 손에 바리바리 들고 아가야, 니 애비 손에 들린 봉다리 속에는 ---------
[시] 닭살, 사랑학 개론 / 김성기 시인
오늘 저녁상 내가 차렸습니다 닭살 돋는다고 다른 반찬들이 -------
[시] 점말동굴 돌담길 / 이복동 시인
흙길을 따라 오르는 내내 발끝 세워 방긋 웃는 노란 야생화 얼음같이 차가운 기운이 신비감마저 도는 푸른 기운 산길이 끝나고 돌담길이 열리면 돌아가는 길을 허락한 선사의 숨결 -------- -------------
아낙의 먼 시선 한 두 방울로 홀로 두고 길 떠난 긴 가을 이 생애 못 건넌다는 강가 얼마나 나섰을까 매화꽃비 수줍게 떨어지는 봄 --------
[시] 보릿고개 / 박길동 시인
보리밭 이랑에서 종달새가 하늘 높이 들녘 보리밭 푸르던 보리이삭 해산하여 산야에서 채취한 나물로 국 끓이고
※1960년~1970년대 농촌 민초들의 삶을 회상하며 ---------
동트자 부지런히 약수터 오르는데
박새는 나뭇가지 옮겨가며 먹이 찾고
어디서 들려오나 나무 찍는 맑은 소리
<SAEM NEWS>
취재본부장 오연복 기자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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