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샘문신인문학상 수상작

*-- 시, 시조, 수필, 대표 작품 연재 스토리 --*

이정록 | 기사입력 2019/07/19 [00:50]

역대 샘문신인문학상 수상작

*-- 시, 시조, 수필, 대표 작품 연재 스토리 --*

이정록 | 입력 : 2019/07/19 [00:50]

 

▲     ©김성기

 

SAEM NEWS

 

역대 샘문신인문학상 수상작 대표 시, 시조, 수필


제 1 회  당선작

 

[시 부문]  삶이 일렁이는 술잔 / 이오동


소래포구는
언제와도 반갑게 반겨주고
언제 봐도 신기하고 새롭다
바닷물이 가득 찰 것 같은 기대감은
맨살을 드러낸 갯벌이 반기고
그 갯벌 위에선 멋쟁이 갈매기들이
반상회를 하고 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언어와 눈짓 손짓이
휘도는 경매장이 신기해 급히 가보는데
입술연지 짙게 바른 예쁜 아주머니들은
사장님 한잔하고 가시라며 발길 붙잡는다
지나는 객 붙잡고 사장님 한잔 하라는
인심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으랴
그래 여기 오면 모두 출세하는 거다
사장님으로......

경매는 끝났으나 그 앞 바닷가 난장에는
우럭도 꽃게도 모든 물고기들은 다 모였다
여기저기 흥정하며 소리마저 흥겹다
어느 할매가 조금만 싸게 달라 사정 한다
필시 걷지도 못해 집에 계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생선일 게다
희뿌연 연기 내뿜고 먼 바다로 떠나는
배 위에서는 동남아인인 듯한
청년의 미소인지 근심인지 알 길 없는
표정이 짠하다 그 역시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이역만리에서 외로운 파도와
비릿한 내음을 견디고 있을게다
포구는 이런저런 사연 가득 안은 많은
인연들이 오고 가는 곳인가 보다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느슨해진 내 삶을 옥조이며
술 한 잔에 내 삶을 띄워본다
해수탕에서 찐하게 땀 뺀 다음
술 한 잔의 맛 어디에 비길소냐
갑자기 술잔 일렁인다
술잔 속 마눌님께서 호령 한다
썰렁해진 술잔 시원하다


        이오동 시인  프로필

          공무원 퇴직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 재학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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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바다를 삼킨 농어 / 오연재


바다에서 꿈을 건진다
밀당의 시간 끝에
드디어 세월을 낚는다
바다의 거대함을 낚는다
손끝에서 느끼는 짜릿함
상상만 해도 떨리는 손맛
결실의 무게에 따라
느끼는 손맛이 다른 달큰한 꿈
농어 한 마리에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들어 있다

겹겹이 장착한 갑옷을 벗겨
은백의 속살 듬성듬성 썰어
접시에 가지런히 눕혀 드리니
무지개가 인사를 한다

풋풋한 내음 가득한 상추에
풋고추 마늘 올리고 초고추장
묻히고 농어에 겨자소스 찍어
그대에게 한 입 가득히 쏘옥
이슬이도 한잔 크, 맛보면
뱃속에서 바다가 출렁인다


         오연재 시인 프로필

           이학박사, 순천대 외래교수, 전남대학교 조교수(겸임)
           Y테크 대표(모바일 증강현실)
           아이디어사업화 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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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갈잎의 노래 / 유병용


동창의 빗장이 열리고 맑은 햇살
자양분 취한 가을은 더위 먹은 구름
깔고 앉아 너스레를 떨다가
소낙비 한 줄금에 계절을 식히고
그렁한 이슬 한 잔 축인 설익은 초록이
오색으로 채색하는 가을이 아름답다

유난스런 몸치장 고추잠자리
사랑놀음 날아오르고 낙엽송 밑
귀뚜리 부러워 외롭다 울부짖는다
붉게 사른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저마다 먼 길 떠나야 하기에
호수 닮은 큰 눈을 가진 노루는
못내 아쉬워 긴 목으로 배웅하고
하얀 억새는 춤바람이 즐겁고
갈잎은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유병용 시인 프로필

           연세대학교 공과대 졸
           중소기업 플랜트 업 경영
           시인들의 샘터문학회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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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인류 보고서 / 신동숙


한낮의 열기로 멍한 날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다른 건물 안보다 훨씬 시원하다
책이 많고 책이 나무로 만든 거라
어떤 공간보다 시원하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숲 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던 소로우와 법정스님의
삶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현실적으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도시에도 그런 숲이 있다
도서관이 나에게는 그런 숲이다
이제 막 피어나는 베스트셀러들은
상추와 깻잎처럼 당장의 고픈 뇌하수체를
채워주기도 하고 때로는 불쏘시개가 되어
더 깊음이 두꺼운 책으로 타 들어갈 수
있도록 제 몸을 사른다

시인의 시향을 담은 시집들로 향기로운 곳
자연, 사회, 과학, 환경, 물리, 화학, 미술, 음악, 체육, 문학, 만화, 동화, 위인, 역사
월간지, 신문 각 분야의 탐스러운 열매들로 가득한 곳
초목처럼 크고 작은 것들
때로는 흙, 바람, 돌멩이처럼 도서관에는 온갖 생명들이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백년 이상 된 둥치가 커다란 고전들은
동서고금을 섭렵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늘 도서관 숲을 지켜온 전설들이다
그 나무 곁에 서서 우듬지 사이로 올려다
보는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도서관의 책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세계와 닮아 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저 꽂혀있는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내 가슴이 이글거리는 태양이 되어
내 시선이 레이져 빔 같은 방향이 되어
내 발걸음 신천지 개척하는 길이 되어
내 손이 창조적인 마법이 되는 정성으로
펼쳤을 때 비로소 열리는 세상

도서관이 크지 않아도 괜찮다
서점이나 작은 헌 책방, 등산길에 만나는 작은 쉼터에 꽂힌 책장 하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라도 작은 방 한 칸이라도
책이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은
이미 우주로 열려 있을 테니까
도서관 숲에서 만나는 책속의 현자들과
나누는 심오한 대화로 마음과 영혼을
맑게 하고 살찌우는 일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전설들은 얘기 한다
나무를 생육하고 꽃을 피우는 일은
해와 별과 달이 하는 일이고
자연에 순응하여 도서관 숲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 인류의 몫이라고

       
          신동숙 시인 프로필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사진과시이야기그룹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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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부문]  탄성가(歎聲歌) / 문장율


태풍이 화가 났나 온 세상 휘 젓는다
세상을 날릴 듯이 멋대로 휘 젓는다
속 좁은 못난 삶들아 함께 들어 날려라

이치가 함께 있어 아름답던 대 자연에
인간이 아집으로 제 멋대로 행했으니
화가 난 신의 섭리도 태풍 보내 화 푼다

날리어 가는 것에 아쉬움 두지 말고
하늘의 뜻을 따라 순리로 살아감이
자연의 이치임이니 화합하며 지내자


         문장율 시조시인 프로필

           아호는 서오(恕悟)
           국제와이즈맨클럽 회원
           은초록 ‘효’ 실천 연구원 설립
           동산교회(광주광역시) 안수집사
           세진종합식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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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남편의 마지막 선물 / 노자규


 남편은 육군대령으로 재직하다 예편한 충직한 군인이었습니다. 정년퇴직하고 시골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어 했던 농장을 하며, 그동안 힘들게 산 대가로 노년의 행복을 보상받으리라 늘 설계하며 살아왔답니다.
 저녁노을이 풀어놓은 황금빛 호수 같은 텃밭의 상추를 따서 저녁을 차리려는데, 아들 내외가 토임을 축하드린다며 찾아왔습니다.
 모처럼 행복한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들 내외는 드릴 말씀이 있다며 응접실로 자리를 마련합니다. 아들 내외의 뜻밖의 소리, 지금 하는 식당이 비전이 없다며 지인의 소개로 떼돈 되는 사업이 있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내외를 돌려보내고 깊은 시름에 빠진 내외는 서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잠을 못 이룹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밤을 보낸 뒤 아내의 간곡한 청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송금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이 아내를 보며 “자식은 저승에서 온 빚쟁이라더니......” 한마디 하곤 냉큼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번질나게 사들고 집을 드나들던 아들 내외의 발걸음이 뜸해지던 해, 밤늦게 빚쟁이들에게 쫒긴다며 도피 자금을 달라는 아들놈,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엄마를 붙들고 온갖 애원을 하는 아들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엄마......
 “그래, 밥은 먹었어?“
 “엄만 지금 밥이 문제야?“
 “날 밝으면 아버지 설득해볼 테니깐 어이 들어가 쉬어.”
 아들의 울음으로 지나든 자리에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아들과 아내는 처분만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만 숙인 채, 멀쑥한 눈빛으로 서로를 훑어볼 따름입니다.
 “이 집은 절대 안 된다. 네 할아버지 때부터 4대가 내려온 집이야. 절대 팔 수 없다.” 단호한 아버지 말에, “아버지도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거잖아요. 저도 손자인데 권리가 있잖아요.”라는 말에 뺨을 후려치는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안절부절 못합니다. “아버지가 죽어도, 절대 안 올거예요.”라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아들이 그렇게 돌아간 뒤, 남편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댑니다. 아내는 부엌 한편에서 애꿎은 그릇 나부랭이들만 닦아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두 사람의 아픔에 스며든 다음날 창백한 눈썹을 달고 며느리가 대문을 젖히고 들어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애 아빠가 죽는다고 전화가 왔어요.”
 어딘지 말을 안 하고 ‘ 잘 살아라’라며 아이들 부탁한다며 전화를 끊더랍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이 집에 몫이 있잖아요. 아버님한테 달라고 하셔요.”
  한참을 울먹거리다 머뭇거리던 아내가 남편에게 악다구니를 피워댑니다.
 “당신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이혼 합시다.”
 “여보 어떻게 그런 말을......”
 “ 이혼하고 내 몫 주셔요. 그 돈으로 아들 살릴랍니다.”
 방바닥에 고개를 묻고 있는 며느리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집니다. 냉골이 다 돼버린 집안에 사흘이란 시간은 일 년보다 길어 보입니다.
 오늘도 며느리한테 온 전화를 들고선 밖으로 나가시는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에 강한 결심을 한 듯 남편 앞에서 짙은 어조로 첫말을 띄웁니다.
 “주셔요, 내 몫! 오늘 이혼하러 갑시다.”
 “당신, 정말 이렇게까지......”
 마음 맞춰 정 주고 살자던 아내가...... 말없이 눈물을 훔치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옵니다. 「인감도장과 신분증」
 “갑시다, 법원으로”
 법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석 뒤에 앉은 남편과 뒷문 옆에 앉은 아내 사이엔 적막이 흘러갑니다. 운전석 후방 거울너머로 보이는 아내의 표정은 슬픔으로 군불을 지핀 듯 어둡고 냉담함이 교차하는 듯합니다. 
 가슴의 응어리를 안으로 녹이면서 법원을 나서는 두 사람. “임자, 거처할 곳은 있소?” 남편의 말에 “걱정 말아요. 애들이 좋은 집 마련해 준다 했으니......” 되돌아가고 싶은 목소리는 마음으로만 되뇌어집니다.
 “당신 있는 곳이 너무 먼 곳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아픔이 낳은 이 시간이 지나는 자리마다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할 아내가 먼저 마음 쓰이는 남편입니다. 나에게 아내란 새에게 하늘과 같은 것, 원하지 않는 이별을 자식 땜에 하게 되는 순간이 살면서 오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의미 없이 뜨고 지는 저 해와 달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허망함을 속내로 감추고 지난날 회한의 정을 눈가에 이슬로 매단 채 다른 길로 걸어가는 두 사람, 35년 결혼 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어지는 게 믿기지 않는 남편은 내 맘과 다른 무정한당신이 빈 하늘로 남겨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허접한 선술집에 앉아 굳어가는 혀끝을 술로 적셔내며 뜻하지 않은 이별 앞에 눈물과 절망을 술잔에 담습니다. 「뒷밭의 오이나 밤하늘에 초승달이나 내 맘이나 굽은 것 똑 같은 밤이네」
 아내를 기다렸던 아들 내외는 엄마에게서 돈을 건네받으며 “엄마 걱정 마, 이것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장사는 대박이야” “어머니 저희가 생활비 섭섭지 않게 매달 보낼게요” 천국 문을 통과한 영혼처럼 밝게 달려 나가는 아들 내외를 보면서 막다른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씻지 못한 얼룩이 되어버린 시간은 돌이켜지질 않는데 때늦은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처음 몇 달 간은 말없어도 들어오던 생활비가 한 달을 건너뛰더니 이제는 들어오질 않습니다. 공공근로와 허드렛일, 청소일로 연명하며 딸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간신히 살아내기도 빠듯합니다.
 오늘은 손주 놈도 보고 싶고 아들 소식도 궁금해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가는 엄마. 행색이 남루한 시어머니를 가게 밖으로 등을 떠밀 듯 데리고 나와서는,
 “왜 말도 없이 찾아오고 그래요. 장사 잘되면 보낼 테니 오지 마셔요.”
 “아니다 아가. 손주 놈도 보고 싶고 아비도 보고 싶고 해서 온 거여. 돈 때문에 온 건 아니다.”
 “됐고요. 애도 학원 다닌다고 바빠 저도 얼굴 못 본지 오래 됐어요.”
 며느리는 냉몰차게 내뱉고는 쫓기듯 돌아서 들어가 버립니다. 훌쩍 떠나버린 바람을 바라보듯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남편......」
 퇴행성관절염으로 겹겹이 아픔을 덧칠한 몸으로 마디마디 늙어가는 초침을 닮아가는 아내...... 슬픔이 말라붙은 남편의 가슴에도 아련함이 찾아오고 맙니다.
 “여보......!”
 눈물로 섞여 나오는 남편의 말은 귓전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흘러갈 뿐입니다.
 며칠이 흐른 어느날 딸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 때문입니다. 말없이 따라나선 아버지는 병원비를 계산하고서 아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섭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자 타다 만 상처가 떠오르지만 안도의 숨결을 먼저 내어놓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의식한 듯 돌아서 있습니다.
 병원 앞 파란 눈 뜬 공원에 마주앉은 세 사람. 이렇게 마주앉아 본 것이 얼마만인지......
 “여보 내가 그때 이혼에 응해준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절반이라도 지킬 수 있었기에......”
 앉기 위해 새가 날 듯 그런 속내를 이제야 알아버린 게 미안한 딸과 아내는 눈물만 흘립니다. 남편은 슬픔에도 시들지 않는 꽃처럼 아내를 감싸 안습니다.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지내고 있으니, 우리 두 사람 작지만 살 수 있소. 같이 합칩시다.”
 아내와 헤어진 뒤 남편의 하루는 날마다 바람을 베고 잠든 날들이었기에,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기지고 찌든 집을 며칠 전부터 도배랑 집안청소에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남편이 아내의 짐을 가지러 오기로 한 날입니다. 아내는 이사 갈 준비에 도우러 온 딸과 함께 짐을 꾸린다고 분주한 모습입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오질 않습니다. 딸이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아버지는 받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황급히 남편의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내를 찾다 끝내 누르지 못한 채 펼쳐진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남편이 죽어 있었습니다. 「심장마비」
 아내와 이 집에서 같이 살 그날만을 기다리다 그날이 되는 날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러 집으로 온 딸과 아내의 눈앞에 책상위에 서류 한 뭉치가 있습니다. 아내와 이별을 하던 그날의 참담함을 담은 한 글자 한 글자, 기억 맨 밑바닥으로 시작하여 아내와 합치기로 한 전날의 기쁨까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란 종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등기부등본」 - 소유자 김영자!
그 서류엔 아내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노자규 수필가 프로필

           시인들의 샘터문학회원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주식회사 엑셀전산 대표이사
           주식회사 그린테크 대표이사
           전국전산인연합회 회장 역임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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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당선작

                    컨버젼스 감성시집 【사랑, 그 이름으로 아름다웠다】

 

[시 부문] 부채길 / 박제명


강릉 정동진 바닷가
녹슨 철조망을 비집고 들어서면
바다와 절벽의 풍경에
탄성이 메아리치고 캘리그라피 같은
흘림 있는 길이 펼쳐진다

완행은 여운의 씨앗
귓전을 맴돌다 돌아나가는 파도소리는
애환과 애정을 비벼놓은
아리송한 연정 같은 것
청초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얼룩진 영혼을 씻겨준다

굽이굽이 돌다보면
외로웠던 여인의 전설이 들려오고
영롱한 심정이 스며들면
멍한 시간을 바람이 깨운다
꽃망울 터지고
파도가 목울대 높여 부르짖는 날
다시 찾아가 만나고 싶다


         박제명 시인 프로필

          강릉시 거주.
          시인들의 샘터문학 운영위원
          송설문학 회원
          백제문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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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시계사랑 / 조정연


당신이 시침이면 난 분침으로
당신을 사랑할래요

하루로 당신을 풀어가며
난 초침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할래요

한 평생 열두 번씩 돌고 돌아서
당신을 가리키는 순간순간
사랑이라 말 할래요

토닥이는 손길로
똑딱이는 열정으로
그대 사랑 온 마음으로
담아낼래요


        
         조정연 시인 프로필

           (전) AsianaAirline 근무, (전) PrivateEnglishtutor
           샘터문학 문화행사국장
           사계속사진과시이야기그룹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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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일월산 도곡리 찬가 / 오부원


백두대간 낙동강 줄기 뿌리에
잡은 터전 일자봉 월자봉 일월산
정기를 품으니 장군천 발원지
샘물의 넘치는 기운 새방골 저수지
심연에서 쉬어간다

수백 년 당산나무 넋을 팔아
마을 수호하는 수목원 품속
전통마을 숲 축제 신명이 나는
사계절 수려한 강산 아름다운 고향
도곡리 산골짝 설화가 주렁주렁

장군의 뼈를 묻은 일월산 자락
물빛 혼백(魂魄)이 흐르는 여울
취은당 오삼달 의병장 우렁찬 호령
백두대간 심혼(心魂)을 울린다

 

         오부원 시인 프로필

           아호 예음. 경북 영양 출생
           안동대학교 예체대 음악과 졸업
           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재학
           한국문인협회 안동군지부 이사 역임
           중등 음악교사 역임. 복지TV강원방송 이사
           예음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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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구름과 비 / 우동은


만날 수 없어서 볼 수 없어서
꾹꾹 눌러 담은 그리움 터져 나와
예쁘게 쓴 붉은 연서
내 님 계신 서녘 하늘 층층구름 위에
언어 놓았는데
밤바람이 펄럭이게 해서라도
지친님의 눈 생기 흐르도록
새벽녘 는개비가 내린다

먼지 뒤집어 쓴 세상 세척 되었나
구름 밤 세워 걸레질 했나
우중충한 얼굴 어정쩡하니 서성이는데
내가 얹어둔 연서는 어찌 되었나
임이 보기도 전 바에 씻기었나
흙먼지에 묻혔나

원망스런 비야
전하지 못한 사랑에
내가 죽어가는 날
날 위한 사모곡 불러주거라
구성진 소리로

소갈머리 없는 먹장구름아
측은지심 있다면
내 넋이라도 전해주거라
절절이 사랑했노라고

 


         우동은 시인 프로필

           목사(미국 이민 목회22년). 아주사대학교‧대학원 졸업
           미주한국일보 칼럼리스트
           (현)반석교회 담임목사
           저서 : 우동목사와 짬뽕교회(쿰란), 종이배에 띄운 하얀 쪽지(쿰란),
                 사랑하는 이에게(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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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비야 고마워 / 김지원


밤새 짚시랑 물소리에
개구리 울음이 파묻힌다
가끔은 간헐적으로 낙숫물 소리와
개구리 울음은
화음 좋은 합창으로 다가온다

그래 그래도 이 비가 고맙지

텃밭의 채소들 생명수를 머금고
룰루랄라 생기 있는 얼굴
내일 아침이면 보여주겠지
옹기종기 모여앉아
달랑달랑 매달려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도담도담 서로 의지한다

그래 그래도 이 비가 고맙지

아직은 초록빛 매실도 그렁그렁
노란 산수유도 별꽃처럼 반짝반짝
한결 봄을 뽐내고 해거리 넘긴 살구는
나긋한 가지마다 주렁주렁 풍년가 부르고
유둣빛 솜털 다 젖는구나
여물지 못한 머루송이는 어쩔꼬
힘없이 고개 숙이고
꼭 이맘 때 내리는 비에 수북이 떨어진
오디를 볼 때가 제일 속상해

그래 그래도 이 비가 고맙지

농부들 땀방울 어루만져주니까
하늘이 주는 자연의 선물이니까
결실 때면 어김없이 풍년을 약속하니까
미래는 항상 좋은 일만 있을 테니까

그래 그래서 이 비가 고맙지

 

         김지원 시인 프로필

           안양 카네기CEO 23기, 아주대학교 최고위56기 수료
           열린사이버대학교 통예치료학과 재학
           대한민국 창의 발명대회 건강분야 대상
           미래창조 발명대회 특별상 및 최우수대상
           유인균 발효전문가, (현) 힐링다이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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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짝사랑 / 강성범


짝사랑이 내게 묻는다
홀로 한 사랑이 아프지 않더냐고
남 몰래 울어본 적은 없느냐고
이제 그만 두면 안 되겠느냐고

저녁노을 소슬바람에
이파리 뚝뚝 떨어져 퍼석해져도
잠 못 들어 베갯잇 적실 때에도
외롭긴 하지만 초라한 건 아니라고
안 하는 것 보단 낫더라고
그렇게 나 혼자 했으니
절대 상처 받을 일 없을 거라고

욕심일까 바램일까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사랑은 적당히 숨겨져 있을 때
왜, 아름다워지지 못하는 걸까
짝사랑 내게 다시 묻는다
비록 바라보는 사랑이더라도
너는 행복했었느냐고
행복했으면
그것으로 되었노라고

 

         강성범 시인 프로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시 교육청, 서울여중‧신수중‧오금고‧가락고‧아현산업정보교 근무
           (현) 성균관 유도회 서울시지부 부회장, 샘터문학 편집이사
           옥조근정훈장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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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얼음새 꽃 / 장정순


음력 정월 초하루
잔설에 덧 내린 눈발 뚫고 꽃대가 솟았다
부귀영화 만복을 빌어주는
산신령의 기도로 설산을 헤치고
얼음새 꽃 그렇게 피었다

샛노란 것이 눈 속에서 파르르 떨던
섣달 그믐날 그 밤
가던 거시어든 가옵사와 서러운
내 님 떠나가던 달그림자를 가리며
얼음새 꽃 차갑던 꽃잎 펼쳤다

나 없이 잘 살라던
내 님의 칼얼음 꽃 피우는 따뜻한 말
정월 대보름 얼음새 꽃 지고
좋은 사람 만나라던
내님 마지막 바람 같은
연분홍매화는 꽃 촉을 틔운다

 

         장정순 시인 프로필

           진주보건대학교 졸업
           (전) 보육시설 시설장
           (현) 자영업 대표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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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바람 / 남희 Fox


초원의 사연은 풀의 이야기
시절이 바뀌고
바람이 바뀌어도
바람은 사연을 실어
이 초원 저 초원 하염없이 달린다
멈추고 바닥에 엎드리면
비로소 가느다란
풀잎의 환희와 비명이
들릴 듯 말 듯

날아가 버리면 잡을 수 없어
잠시라도 그 자리에
넋이 깃든다


         남희Fox 시인 프로필

           카오슝 거주. 오클라호마 대학‧대학원 심리학 석사
           정신건강 상담사(괌 정신건강 약물치료국)
           영어교육강사(5년), 한국Kindergarten to adults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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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철부지 사랑 / 이종식


뼈 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
손 모아 호호 불며 다가온 철부지 소녀
두 손 비비고 비벼
내 볼에 대며 깔깔거리던
개그스러워 깜찍했던 소녀

난생 첨 느껴본 기분이다
가쁜 숨 사이로 흐르는 눈빛
쿵쿵쿵 천둥치는 가슴

그녀의 홍단치마 속으로
나는 푹 파묻혔다
짜릿한 첫 사랑이었어


         이종식 시인 프로필

           아호는 덕실고을
           (주)한성플랜트 회장, (사)베트남 따이한 후원지도 본부장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글벗창작교실 입선, 월간문학 시 부문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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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인간의 모습 / 손관일


인간의 두 얼굴이
자유의 여신을 외면할지라도
어둠에 가려진 꽃
자유 갈망하는 인간의 꿈 노래하리

자유를 갈망했던 밤은
어디서 잠들어 있는가 하면
지상에서 닿을 수 없는 별에서
환상의 날개 속에서만 만질 수 있단 말인가
평화를 간직했던 지난날을
인간을 사랑했던 꿈을
물거품 속 잠들었던 인간의 죄악
어둠의 노래만 부르리

한낱 인간의 죄악이
푸른 하늘의 신성함을 헤아릴 수 없고
참회의 눈물 진실한 영혼을 누일 때
하늘의 심혼에 잠들 수 있으리

난 자유를 갈망했고
불완전한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내 꿈이 잠들어 있는
하느님 의지하며 기도했다
선한 인간 지상의 노래를 부를 때
과거의 상처
안식의 그늘에서 숨 쉴 수 있으리

하늘이여
인간의 죄의식으로부터
인간의 인성이 선한 인간을 볼 수 있는 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
인간이 간직한 믿음의 손길
푸른 하늘을 향해
진실한 인간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 보다 더한 기쁨은 없으리


         손관일 시인 프로필

           경남전문대 전자과 졸업
           조선3사 기능공(10년 재직)
           (현)자영업 대표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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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거꾸로 흐르지 않는 강 / 이동원


세계에는 큰 강이 참 많다
중국의 황하, 양쯔강
미국의 미시시피강
한국의 한강, 낙동강, 영산강

이런 바다 같은 강들은
한 결 같이 자연에 순응하여
목적지로 말도 없이 흘러간다
강에는 큰 생명들이 살고 있고
생명이 강을 생명처럼 움직이고
에너지를 주변의 생명들에게
끊임없이 나눠 준다

밤에는 하늘에 많은 별들을 품고
그 별들을 하나하나 정화시켜준다
이 강들은 태고에 사막이나
또는 험준한 산으로 태어났을지 모른다
어느 순간 큰 강으로 태어나
지구의 큰 생명체로 날개를 펴고
하늘에 새가 날 듯
그들의 몸체를 약진시킨다네
아 나의 삶은 이 큰 강에서 탄생했구나
깨닫는 순간 모든 만물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이동원 시인 프로필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LG전자 AV사업부 근무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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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카르페 디엠 / 김혜주


[즐겨라! 지금]

 시월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일 년을 계절 따라 살아가다 이국의 향취를 맡고 싶어 안달 날 즈음 서재 끝에 꽂혀있는 사르트르의 ‘프라하의 봄’을 발견한다.
 사회주의로 부터의 해방, 체코 지식인들의 자유화 운동, 어려워서 몇 번을 되새겨 읽은 후 겨우 알아가던 작품! 실체감도 없이 열망하고 동경하던 체코 프라하의 오월!
 하늘빛이 다르고 얼굴 생김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곳의 봄꽃은 성에 낀 눈꽃처럼 시릴 것만 같다.
 이제 가고 싶었던 이유를 찾아내고 시린 오월의 봄을 가진 프라하를 만나면 어떤 벅찬 가슴으로 어떤 탄성을 지를 지! 지구 천지간의 맞닿은 하늘을 길게 늘여서라도 비행할 수 있는 가치를 금빛 싸라기로 실어 나를 생각에 벅찬 가슴으로 심호흡을 한다.
 구름길 닮은 남프랑스부터 길을 따라 간다.

 “카르페 디엠 <즐겨라, 지금!>”


[새론, 세상을 향하여 출발]

 절기상 입추를 지나면서 남은 시간을 잽싸게 가동 시켰다. 70여 킬로미터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다. 저 멀리 펄럭이는 태극기...... 높은 건물이 없는 탓에 넓은 하늘의 구름을 만져볼 수 있는 세계적인 국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빠르게 셀프 체크인을 했다. 아슬아슬하게 초과를 면한 23 킬로의 가방을 부치고 두 손 탈탈 털었다. 홀가분한 맘으로 출국 수속을 했다.
 이제 나의 모든 오감이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향해 있다. 샘물 한 통을 손에 들고 시작하는 여행! 비행기가 열 세 시간의 날개를 펼쳐줄 것이다.

[코리지앤느가 되다]

 파리는 살아 있었다. 저녁 무렵의 공기는 약간의 습도와 함께 살짝 더위가 올라왔다. 거리는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닌데 빌딩의 불들이 꺼져 있어 어두운 편이었다. 작년 봄에 왔던 파리와 달라진 게 없는 상냥한 나라! 다국적 인들이 함께 공존하는 나라여서인지 다소 소란스러운 면도 있지만 파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건 틀림없다.

 대부분 시차로 잠을 설치고 낮은 구름으로 아침을 여는 파리의 공원, 파리의 연인, 파리의 알랭드롱, 파리의 우수어린 낭만...... 이런 막연한 감상으로 어렴풋이 가져왔던 동경심, 바스티유 광장에서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프랑스의 근대사, 감옥에서 융합에의 길, “자유‧평등‧박애” 프랑스의 이념아래 세계의 많은 다인종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잠시 이 나라의 이념에 대한 거창한 생각을 하다가 낭만적인 파리를 즐기기 위해서 순교자의 언덕인 몽마르트로 향했다.
 고흐와 피카소, 예술가들의 거리로 유명한 테르트르 광장을 돌아보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무명화가들의 거리...... 몽마르트 언덕은 관광객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여유와 낭만이 출렁였다.
 오밀조밀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내려오다 보면 언덕 끝에 자리한 백색의 성당!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생애가 화려하게 조각된 성심성당이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침 정통 미사를 볼 수 있는 시간에 성지를 순례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성체를 영하고 성체조배의 축복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은 파리의 잔잔한 감동이 가슴에 출렁이는 호사를 누렸다.
 자갈과 흙의 오래된 길, 역사의 흔적이 보존된 길을 거쳐 몽마르트 언덕을 내려오면서 두리번거리는 코리지앤느. 프랑스 역사이자 영광의 상징인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로 Let’s go!
 개선문과 그 주위를 둘러싼 드골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 12 개의 대로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하여 에트왈 또는 별 광장이라 한다. 두 번째 방문인지라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유명하다는 베수비오의 하와이완 피자와 콜라, 네스프레소 매장 안의 에스프레소 향이 코끝에 달린 채로 잘 알려진 노트르담 성당을 향해 한 시간 정도 걸었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곳, 카톨릭의 진수 성 쎄버린성당! 목조건물 성전에 놀랍도록 귀한 보존을 들여다 볼 수 있음에 거룩한 감사가 이어졌다.
 하늘색이 누르스름하게 달라지고 외테이블에서 먹는 저녁식사는 야채스프, 송아지스테이크, 감자튀김, 샐러드 등 최고의 요리였다. 서로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며, 지나는 사람과도 친근한 미소와 눈인사......
 파리의 시떼 섬은 가을로 물들어가고 난, 물든 사랑에 흠뻑 취했다.
 

         김혜주 수필가 프로필

           아호는 운경, 서울 출생
           정신여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사진과시이야기 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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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바퀴 속에서 / 이근식


 어제 아침 출근길에 탈장 수술로 불편해 하는 나를 배려해서 아내가 차 핸들을 잡았다.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페신저 씨트를 두 단계 뒤로 재끼고 피곤과 통증을 녹이고 있었다. 공장에 도착하면 유로 주차장으로 차를 옮기는 일은 항상 내가 담당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내가 어제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걱정이 되어 생각이 반쯤 이미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예감이 이상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차에서 급하게 내렸다.
 아뿔사! 아내는 변동기 쉬프트를 주차 레벨에 놓지 않고 드라이브 레벨에 그대로 놓고 사이드 브레이크도 채우지 않고 내린 것이다. 아내가 내리면 내가 운전석으로 가기로 되어 있는데 내리고 보니 멈춰야 할 차가 그냥 서행으로 가고 있었다. 차는 계속해서 운전자 없이 앞으로 가고 있고 앞을 보니 차들이 즐비하게 스트리트 파킹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렇게 계속 굴러가다가는 앞 차들을 박살내고 대형 사고를 일으킬 판이다. 나는 대책도 없이 서행하는 차 앞으로 가서 차를 멈추어보려고 차 앞  부분을 붙들고 버티었다. 마치 슈퍼맨처럼, 아니 드라마 ‘ 별에게서 온 그대’의 주인공처럼 차를 세우려고 하였다. 깨갱! 힘이 부친 나는 물이 흥건한 길바닥에서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나는 차바퀴 밑으로 떨어졌다. 차가 몸 위로 덮쳐오고 머리는 수박처럼 터질 판이었다.
 그 때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악!!!!!” 근처 빌딩 건축 작업을 하던 인부 다섯 명이 달려와 굴러가는 차를 세웠다. 내 얼굴 한 쪽은 도로 바닥에 깎이어 반쪽이 되고 무릎과 왼손은 나동그라지는 바람에 차에 치어서 피투성이가 되어 반병신 꼴이었다.
 난 아직 저승 티켓을 구매하지 않았고 갈 때도 집 사람과 백년해로 하다가 두 장의 티켓을 끊어 같이 가기로 맹세했다. 한 가지 더 있다. 나는 아직 저승 가는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 그래서 자격이 없으니 저승사자들이 자격증 없다고 되돌려 보낼 것 아닌가? 나는 눈의 되돌린 핏물이 핑 돌고 살았다는 안도감과 감사의 떨림이 기쁨의 선율이 되어 울린다.
 신들이 사자로 보내주신 인부들도 되돌아가고 비명의 기운으로 도와주신 여인들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기운을 주신 구경꾼들이 다가왔다.
 “Are you ok?”
 “Yes I am ok, thank you God! thank you everybody!!!”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인간들 가슴 속에 존재하는 사랑의 샘물이 흐르고 생명수 한 그릇 얻어먹고 되돌아오는 생사의 경계를 체험 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정말이지 선하다.

 쑥밭의 쑥을 제거하기란 엄청 어렵다. 그만큼 뿌리와 뿌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부부가 합궁하여 남녀의 두 원소가 결합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듯, 신의 품속에서 출발한 사랑의 성품은 모든 만물에게 연결되어 있다. 단지 우리는 속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수호하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과한 반응으로 이기와 욕망을 낳고 타인들이 무시할까봐 두려움을 감추려는 지나친 무리수가 우리 눈을 가리고 서로의 가슴 속에 연결 되어 있어 쑥의 뿌리와 같이 얽히고설킨 사랑의 허브를 연결을 못하고 의심한다.
 서로 연결해 수신하고 나누기 시작하면 보이고 품을 수 있는 것을 비명과 눈빛 코러스 선사하신 여 천사들과 신들의 사자로 오신 건축 인부들 현자의 손길 속에서 인간에게 가졌던 꿈의 플랫폼이 잘 가동되고 있음을 인지했고 더 큰 사랑으로 커 나가고 있음을 깨달은 감사한 아침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근식 수필가 프로필

           중앙대학교 중퇴. 브라질 이민(1978), 미국 이민(1985)
           하나님의 교회 성도
           패션의류업 경영(대표)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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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명월이 만공산하니 / 송영기


 청산영리벽계수 용이동류이막과 (靑山影裏碧溪水 容易東流爾寞誇)
 일도창강난재견 차류명월영사바 (一到滄江難再見 且留明月映娑婆)

 내가 어릴 때 제일 먼저 듣고 외운 시조는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였으며, 그 다음이 바로 위의 한시와 같은 내용의 황진이 시조였다. 비록 초등학교 저 학년 때였으나 아름다운 동경의 상념을 가지게 하였고, 또한 인생의 깊은 맛을 은근히 느끼게 해주었던 것으로서 언제 들어도 아련한 정감을 준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수어간들 어떠리

 개성의 황진사와 어머니 진현금(陳玄琴)의 딸인 황진이(1525년경)는 한시로는 허난설헌과 비견되고 시조는 그 여인보다 능하였으며 자색이 뛰어나 절대가인인바, 스스로 일컬어 송도삼절(松都三節)이라 하였다. 즉 박연폭포(朴淵瀑布)의 절경과 서화담(徐花潭)의 도덕 그리고 진이 자신의 용모로써 서경덕(徐敬德)의 그 범할 수 없는 인품에 반하여 말한 것이다.

 개성의 명기로서 명월(明月)이라는 자(字)로 인구에 회자되는 그 황진이와 관련해서 방명(芳名)을 날린 멋쟁이들이 여럿 있었으니, 그들은 개성유수 송화영(宋和英) - 장곡 소세양(蘇世讓) - 벽계수(碧溪守) - 지족선사(知足禪師) - 사죽(絲竹)의 국수(國手)인 명 악공(名樂工) 엄수(嚴守) - 선전관이자 가객인 이사종(李士宗) - 서경덕 – 백호 임제(林悌) 등이다.

 평소 풍류를 즐기던 이 선비들은 술은 좋아하지만 여색에는 의연하다고 스스로 장담하던 인물들이었고 , 한편 돈이나 권세를 탐하지 않는 명기였던 황진이는 또 그들이 얼마나 뻐기나 어디 두고 보자고 내심 벼르며, 그들을 술과 미모, 시와 절창가락으로 유혹 하였다.
 그 결과 화담선생만이 끝까지 초연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명월의 빼어난 기량에 끝내 매혹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래서 지금도 기억되는 시가 나오게 되었고 그분들의 향기로운 풍류담이 길이 남게 되었으니, 이 아니 즐거운 일인가?

 때마침 달이 밝은 날 밤이었다. 만월대의 폐허 주춧돌에 서 있는 사내, 종신 벽계수가 매어둔 당나귀를 타고 막 돌아가려 하자 황진이는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가라고 시로 추파를 던졌다. 그 절창에 매료된 천하의 벽계수도 송도에 머물면서 진이에게 만나자고 간청하였으나 명월이는 짐짓 내일 오면 만나리라고 거절하여 돌려보내고 말았다.
 또 지족암(知足庵)에서 20년간 면벽수행한 귀법사(歸法寺)의 지족선사를 찾아가 아리따운 미모로 파계하도록 하였었지만, 도덕군자인 서경덕만은 뜻대로 되지 아니하였다.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교수의 한국현대한시시화에 보면 황진이가 일찍이 나귀를 타고서 서화담 선생의 집 문 앞을 지나가는데 선생이 장난으로 이렇게 한 귀를 읊었다.

 마음은 예쁜 아가씨를 따라 가지만 (心逐紅粧去)
 몸은 헛되이 문에 기대어 섰네     (身空從倚門)
 
이에 황진이가 즉시 댓귀(對句)를 읊기를

 나귀도 내가 무거운 듯 신음을 하니 (驢嗔疑我重)
 아마도 한 사람의 마음이 덧붙어 타고 오는가 보오 (添載一人魂)

 그녀의 재빠른 기지가 이와 같았다.

 지족선사의 도심(道心)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난 명월이가, 후에 서경덕(1489~1546)이 보고 싶어서 다시 화담으로 찾아 갔으나 이미 그는 고인이 되고 없었다. 그의 죽음을 알고 인간은 무상 하구나 탄식하며 또 이렇게 읊었나니,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흘러가니 옛물이 있을손가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메라

 그 서경덕으로 말하면, 그가 송도 문밖 화담에서 은거수도(隱居修道)할 때 하루는 밭에서 채소를 채취하다가 종달새가 매일 1척1촌(一尺一寸 ; 33cm)씩 점진적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수 일 만에 땅기운의 화란함을 쫓아 종달새가 날로 비양(飛揚)되는 원리를 깨달았던 인물이다.

 중종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와 대제학(大提學 ; 국립대총장)을 지낸 양곡(暘谷) 소세양(蘇世讓 ; 1486~1562)은 문장과 필법으로 당대 명성을 날린 인물인데, 그는 늘 일찍 집으로 돌아가 20여년을 한가한 시간을 즐기니 그 청한지복(淸閑之福0이 이 보다 더한 이가 없었다한 선비였는바, 황진이는 그를 좋아하여 함께 여러날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떠난다 하기에 다음과 같이 전별시(餞別詩)를 드리니, 소세양은 나도 또한 인간이다(吾亦人也)라고 하면서 며칠 더 머물렀다고 한다.

 달 아래 오동잎 지고             (月下梧桐盡)
 서리 맞은 노란 들국화 아름답다  (霜中野菊花)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았고       (高天一尺)
 사람은 술에 취해 있어라         (人醉酒千觴)
 흐르는 물 거문고 소리와 더불어 차가운데 (流水和琴冷)
 매화는 피리소리에 섞여 향기롭구나       (梅花入笛香)
 이제 내일 아침에 서로 이별하고 나면     (明朝相別後)
 그리운 정은 푸른 물결처럼 굽이치리라    (精與碧波長)

 그러나 한번 떠나간 소세양은 다시 찾아오지 아니하였으니, 황진이가 그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읊었다.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둘을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얼운 님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이러한 명월이를 두고 먼 훗날 평안도 부사가 되어 부임하는 백호(白湖) 임제(林悌 ; 1549~1562)가 길가에 외로이 묻혀있는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며 그 앞에서 제문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는다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평소 문장이 호탕하고 시에 능한 이 멋진 호남아는 명산대택(名山大澤)에 놀기를 좋아했는데,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운 이 시조 한 편으로 그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유학(儒學)하는 선비로서 기녀의 묘에서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의 눈물을 뿌린 이 이로 인하여 조정에 불미한 평판이 돌아 파관 되었다고 한다. 그는 39세에 졸하였다.

 아무튼 절세가인이자 일대명기였던 명월 황진이의 그 주옥같은 절창시조 한 수 읊으며, 나는 마음으로나마 오늘 그 뛰어난 미인을 생각해 본다.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가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 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 고


         송영기 시조시인 프로필

           아호는 도운(都雲) ‧ 유산(楡山)
           충북 영동 추풍령 출생
           김천고, 국민대 법학과 졸업
           좋은문학창작예술인협회 등단, 한국문인협회 영동군지부 회원
           시인들의 샘터 정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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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기자와 어르신 / 김성기


[내 인생을 명품이 되게 하라]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댔다. 
“어르신 지난번에도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셨는데, 민망한 말씀입니다만 이번에도 꼴찌로 들어오셨군요.”
 “어허, 기자 양반 자네가 보기에는 내가 꼴찌로 보이시는가?”
어르신이 너털웃음을 보이신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어르신 매번 이렇게 꼴찌로 들어오시는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셨는지요?”
 “맞아 그렇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말이야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뛰다가 쓰러져 죽으면 정말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네?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응, 내 주위에 친구들이 소파에 누워서 TV 리모컨만 갖고 놀다가 하나 둘 산에 가 누워 있거든.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결심했지. 죽을 때 저렇게는 죽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보니 가끔 신문 기사에 마라톤 풀코스를 다 뛰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는 소식을 여러 번 접했네. 그때 무릎을 탁 쳤다네. 맞아, 저거야 이왕지사 죽는 거라면 저렇게 죽어야겠다. 고 어떤가? 마라톤 하다가 쓰러져 생을 마감하면 자네한테도 좋은 기사거리 하나 제공하는 것 아닌가. 안 그런가?”
 “네, 어르신 그건 그렇습니다만 너무 애석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이시죠.”
 “그러면 오늘 자네하고 인연이 되었으니 특종 하나 줄까 하네.”
 “넷? 어르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뛰다가 죽는 것까지는 평소에도 그럴 수 있는 기사거리겠지만...... 특종은 바로 왜, 내가 마라톤 코스를 뛰다가 죽고 싶어 했을까. 거기에 있지 않겠나?”
 “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기자 양반, 자네 지금 몇 살인가?”
 “아, 네 저는 삼 십 대 초반입니다, 어르신”
 “내가 말이야 자네 나이쯤에서 인생을 깨달았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더 명품 인생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네. 자네는 오늘 나 보다 더 일찍 인생의 깨달음이 있기 바라고 자네 또래들 역시 인생 길 과정과 목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네. 인생길을 흔히 마라톤과 비교하곤 하지.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 끝에 오는 마지막 명품 인생의 길, 나는 과연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깊이 생각하고 수립하라는 뜻이네.”
 그 말씀을 툭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어르신은 벌써 저만치 가셨다. 그 어르신의 뒤 모습이 너무나 당당해 보였으며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좋은 말씀 감사 합니다. 어르신 인생이야말로 정말 명품이십니다.”
 크게 외쳐대는 기자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한쪽 볼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한줄기 눈물은 확신에 찬 기자의 표상이었다.

 

         김성기 수필가 프로필

           아호 : 송목
           한양대학교 졸업
           양심문학 신인문학상(시 부문 등단)
           시인들의 샘터문학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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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그해 오월 무등산은 알고 있다 / 정정기


 우리는 보았습니다. 새벽이슬에 못다 핀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그해 오월을 생각하면 새벽에 나타난 찬바람에 견디지 못해 꽃잎 졌나, 그런 안타까운 생각만 했던 그때가 어느덧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해 오월은 모두에게 장미꽃으로 가득한 축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월의 축제는 피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아침에 출근했던 가장이, 학교 갔다 집에 오던 내 아들딸들이 주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참 많이도 슬퍼하고 울었으며 차디찬 증오만 키운 봄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해 봄 무등산은 알고 있습니다. 말없이 침묵만 지키는 것 같지만 한 맺힌 무등산은 꽃 한 송이 제대로 피울 수 없었고, 꽃 피울 수 없는 봄을 무등산은 참 많이 아파했습니다. 홀연히 일어선 수많은 무등인은 울분을 토하고 두 주먹 불끈 쥐지만, 쉽게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도 그해 오월의 봄이었습니다.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며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손에 쥐어진 주먹밥에, 너는 나서지 말라며 붙잡기 보다는 저들을 저렇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시며 어깨를 두드리시며 용기를 돋아 주시던 아버지...... 우리의 염원과 격려를 무등산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진실을 은폐하며 모든 것이 사법적으로 처리되었다면서 그해 오월을 정당화 시키려는 저들의 양심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그들은 과연 그들의 자식과 자손에게 역사적 사실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언제까지 두 눈 감고 두 귀를 틀어막고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러나 오월의 봄은 말없이 침묵하기를 거부한지 이미 오래전이고 오히려 더욱 거센 파도가 되어 가슴을 친다.
 진실은 역사 속에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니며 속였던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것이 다수의 소망이고 민주주의라는 것을 산증인 무등산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오를 수 없는 악산을 힘겹게 넘으려 합니다. 저들이 저렇게 악마의 탈을 쓰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옹호하는 자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진실을 은폐하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알고 있듯이, 무등산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욕망의 늪에 빠져있다 하여도, 꼭 이루어야 할 야망이라도 이루어가는 질서에 문제가 있고 절차나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사회전반 다수의 의견이나 질책이 있을 때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필요했음이다. 저들은 아직도 부정하는 무지함이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악독함이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원흉이 소위 자서전이라는 지면을 통해 글로써 자기 합리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을 부관참시 하듯 또 죽이고 유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입니다. 지금의 오월은 저들의 어리석음을 알고 죄악임을 깨닫고 본성을 자각하여 용서를 구하는 자들에게 용서를 할 수 있고 잘못을 뉘우친 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진실을 말하는 자들에게 용서를 베풀 수 있습니다. 무등산은 늘 잊지 않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해 오월의 봄은 살아있는 한 잊을 수 없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아픔이기에 수십 년이 흘러도 우리의 마음은 그해 오월 무등산과 함께 하며 가슴에 담아두는 것입니다. 무등산이 수십 년이 흘러도 기억하듯이 또 수십 년이 지나고 수많은 해와 달이 바뀌어도 무등산은 그해 오월의 봄을 기억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상하고 생각하기 싫은 오월이어도 모두의 생각과 가슴에 진 짐 내려놓고 손에 손을 잡고 역사의 넋들이 잠들어 있는 무등산 기슭에서 눈물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까지 피 멍진 가슴 풀어낼 수 있을 때까지 무등산은 정의로운 깃발 펄럭이며 도도한 바람 틀어쥐고 의연한 기다림으로 그해 오월의 봄을 맞을 겁니다.


         정정기 수필가 프로필

           자영업 대표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송설문학, 백제문단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     ©이정록

 

 

 

제 3 회 당선작

                     컨버젼스 감성시집 【청록빛 사랑 속으로】

 

 [시 부문]  캔버스위에서의 자유 / 박길동


붓을 문 입으로 꽃을 피우고
발끝으로도 꽃을 피운다

이슬 먹은 잎사귀들이
아침 초원에 펼쳐지고
초목은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붓과 물감 두 날개로
세상을 날아다니는 캔버스는
지금 마음껏 자유를 만끽 중이다


         박길동 시인 프로필

          육군대학 연대장 역임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샘터문학 자문위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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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함정, 그리고 꿈길 / 홍선종


허우적거리는 소리, 또 누군가 빠졌어
비탄의 아우성 소리, 애걸한들 무슨 소용
이미 침몰하는 존재이고 배인 것을

빠져드는 순간,
쥬라기 시절 아프리카 습지대
프로토스쿠스 악어처럼 달려들어
헤집는다

금테 두른 금수저들이여
재화나 권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니
돌다리를 양보하고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건너라 하지 않소

치열히 쌓아온 부나 명예가
개미지옥에 빠진 버러지들처럼
그 어느 날 허물만 남기고 사라지니
얼마나 무상하고 허무 하겠소

아, 차라리 꿈길이었으면,
동산에 달이 뜨니 스산한 꿈길이었으면


         홍선종 시인 프로필

           강원도 영월 출생
           대한민국 육군 정년퇴직
           가평 아이유펜션 운영
           샘터창작문예대학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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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호롱불 / 박금숙


어둠이 내리면
아버지는 호롱불 켜신다
해는 저물어 칠흑 같은 밤
오촉이면 토담 백년초까지
훤히 보인다

가난이 그을음처럼 무명심지가
어머니 속처럼 타들어가고
구멍 난 양말 신고 온 동네 돌던 바람
문풍지를 두드리면

어느새 새벽녘 군불 지피며
궁시렁 대시던, 그 기억까지도
이제는 희미해진 유년시절의 겨울


         박금숙 시인 프로필

           서울시 성북구 거주
           한국방송대학교 국문과 졸업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샘터문학 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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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어머니 / 정종호


어디에 계시옵니까?
한없이 부르고 싶었던 벅차오르는
그리운 이름입니다

마음속에 스며버린, 그저 흘려버린
덧없는 세월에 숙연히 고개 숙인
나의 하염없는 외침입니다

그리운 사모의 정
목울대 휘감아 울컥거리며
불면의 밤 휘적거리며
사무쳐 부르는 어머니, 어머니
언제나 부르고 싶었던
애절한 이름이었습니다

수천만 번 불러도
가슴 미어져 터질 것만 같아
엎드려 두 손 모아 불러봅니다
평생을 철부지 자식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고
인자하신 따뜻한 모습으로
묵묵히 걸어오신 외길이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이 생 다하여 재회 하는 날
꼭 다시 안기고 싶습니다
당신 품에


         정종호 시인 프로필

           경북대학교 졸업
           (주) UKK, D&C 대표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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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목련 / 송경숙


수억 년의 하루가 녹아든 화석 속에서
하얀 그리움이 피어난다

휘영청 달빛 고운 밤이면 순백의 고고한 자태는
은은한 향기마저 더하고 청산옥수
한 떨기 난초와 같구나

따뜻한 봄날 만물이 나서 자라는 계절에
초록물결 흐드러지고 봄이 익어 가면
너의 그 청아한 순결도 붉은 진주 삼키고
처연한 듯 하얗게 새벽을 맞는구나


         송경숙 시인 프로필

           경남 남해 출생,  ㈜경남개발 근무
           동의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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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풀꽃보다 못하다 / 장주우 


피는 꽃들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억지 부리지도 끈덕지게 조르지 않아도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우리 어무이는 자식 보고 싶어도
전화기 들었다 놨다 고민 하시는데 
은혜를 모르는 불효한 자식 놈들
늙으신 부모 안중에 없고
내리 사랑이라,
제 새끼만 최고다 목말 태운다

흐드러진 벚꽃들아, 올해는
아부지 어무이, 네 향긋한 내음으로
텅 빈 가슴, 마른 정 채우시려나 보다
자식도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
품 떠난 새끼들,
뜰에 핀 풀꽃 보다 못하다

빨간 사과 자식새끼들 위해
예쁜 손주들 먹이려고 심었는데
올해도 까치밥 되려나, 걱정에
아부지 시름이 천 길 절벽이고
한숨이 태산을 넘는다


         장주우 시인 프로필

         건설사 대표
           샘터창작문예대학 재학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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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일몰 / 송청락


사랑이 졌다
영원히 함께 하자던
그 사랑이 지고 말았다

바다는 푸르고
거센 저녁 바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
삼켜버렸다

출렁이거나 잠잠한
마음의 파도가
밤이 새도록 밀려 올 것을
가슴은 아는지
우렁우렁 피를 토한다

구름이 온통 피로 물든다
내 가슴도 피멍이 든다
영원히 기억할게
죽어도 못 지울 멍울


         송청락 시인 프로필

           이학박사(수료), 경영학 박사
           한림성심대학교 교수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수상
           대야문화제 백일장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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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비 오는 아침 / 김종국


비 오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고질병 같은
그리움이 꿈틀댄다

쓰고 지우길 몇 번을 하여도
그댈 향한 내 마음 나타낼 수 없어

오늘 같은 날에
그댈 향한 마음 흠뻑 적시게
빨랫줄에 걸어 두련다


         김종국 시인 프로필

           경남여상 교사 역임
           울산무거 와이즈만 영재학원 대표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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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요리 쇼 / 허유진


듬성듬성 하늘을 들어 올리는 비늘
까끌거리는 더께 이빨
노인과 바다는 출렁이며 펄떡이는
내장을 연주하지

신명나는 탕탕탕
잘린 목덜미는 목울대로 삼켜지고
즐거웁게 탕탕탕
휘황찬란한 연주, 붉은 악단 지휘자

수조 속은 파랗게, 아직까진 파랗게
피 튀기는 바다극장 기대하며

“얘 너는 이름이 뭐니”
“난, 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될 거야”

파란 등줄 고기, 수조를 횡단하다
늙어 흐느러지는 문어에게
주둥이 뻐끔뻐끔 부풀어 입장순서 가리다
얼떨결에 입장하지

앵콜 없이 다시 찾은 탕탕탕
노인과 바다는 붉게 출렁이고
지휘자 손에서 창조되는 피바다

“어때 수조의 계절, 여전히 파란가?”
대기 줄 문어, 금세 눈을 감지

“얘, 일어나”
다음 공연엔 더 맛있는 소리가 날 거야


         허유진 시인 프로필

           이리여고 재학 중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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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아비 / 김현숙


볕 좋은 봄날
지개 지고 들 일 나가는 늙은 아비는
사십 중반에 본 막내를 바지개에 올려놓고
하냥 콧노래를 불렀다

요, 이쁜 내 새끼
금은보화를 준들 너랑 바꿀까
아가, 아가야

밭두렁에 심어 놓은 달큰한 수숫대
행여 입이라도 베일까
곱디고운 속살만 눈으로 씹어 입에 물려준
그 아비의 나이가 들어서야
그 사랑의 무게 가슴 후벼지게 느끼고
불러보는 애잔한 사랑

누가 나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사랑 닦고 또 닦아 가슴 깊이 안으며
아비의 마음 언저리에 살짝 놓는다
내 마음 그렇게 그 옆에 머문다
이렇게 볕 좋은 날이면


         김현숙 시인 프로필

           문화나눔뿌리 이사, 익산시 어양동 자치위원
           대한시문학협회 전북지회 회원
           풀빛소리 시문학회 회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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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강황 사러 가는 길 / 이근식


카레의 재료 강황이
인도의 두뇌와 건강을 지켰다
아내의 새벽 웰빙 믹서 쥬스
내 건강을 지켜준다

믹서 쥬스 재료인 강황이 똑 떨어졌다
인도인 상가로 나선 둘만의 데이트
수많은 신호등 숲 사이
아내의 교통강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동물들
뇌하수체에서 교차되는 길들
생각보다 먼 길
인디아나 존스의 탐험이

불안한 차는
주인부부의 눈치를 살핀다
어디까지 가야 하나
여기가 여긴 것 같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신기루가 줄을 선다
날선 눈은 건물을 도려내 해부하고
소견의 길을 만들어 간다
눈이 더듬거리니 움칠 놀란 언어는
궁둥이를 실룩거리고

갑자기 나타난 교회 종탑
북극성처럼 반갑다
거룩한 시온의 길이 보이고
아내의 아베마리아 탄성 울린다
우측으로 꺾어

꿈을 사러가는 길인가?
천로역정이 되었다
상가의 터번 씨크와 힌두의 냄새가
코끝을 다듬고,
신비스러운 가게 문이 열린다
종교의 색깔이 걷히면 하나인데
종교에도 혹시 신기루가?
인도 음악이 들려온다
나쁘지 않다
인디 식료품에 움찔하는 나의 편견
먹어보지도 않고 사절
언제 우리는 하나가 되는가

아, 강황의 연결고리에
나의 회개가 흐른다
나는 무슬림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
끝없이 깨져야 할 편견이다
아, 나는 바리세인인가?
힌두인, 시크인, 불교인, 이슬람인
그리고 나는 기독인
나는 홀로그램을 돌린다


         이근식 시인 프로필

           중앙대학교 중퇴
           브라질 이민(1978년), 미국 이민(1985년)
           하나님 교회 성도, 패션의류사업 대표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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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첫 눈 내리는 아침에 뜨는 달 / 김현숙


밝아 오는 아침 햇살 뒤로 하고
숨어드는 저 아침 달은 수줍어서일까
기다림에 지쳐 잠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못 잊은 그대 탓일까

느리게만 흘러가는 저 아침 달은
무슨 미련이 저리도 많아
자신마저 잊은 채
갈 길마저 잊은 채
돌아서지 못하고 저토록 서성대는가

부질없는 기다림은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돌아올 수 없는 기다림은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만을
남긴다는 것을 모르는 채
기다림에 지쳐 눈 내리는 거리에
저리도 우무럭거리고 있는가

첫눈 내리는 거리
서성이며 떠 있는 저 아침 달
무슨 사연이 저리도 많아
무슨 연민이 그리도 많아
아직도 못 잊는 그대를 비추는 것일까

 

         김현숙 시인 프로필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 그룹 회원
           송설문학 회원, 백제문단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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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담배의 유해성 / 김광식


나 잠시 동안 기다랗고 하얀 행성에
빼빼로 닮은 모습으로 포로가 되었지

사각 우주선에 나란히 서 있었지
그런데 외계인이 날 두 손가락으로
쓰다듬더니 부드럽고 아름다운 두 입술로
알몸을 거친 호흡으로 뜨겁게 애무했어

그는 그렇게 내 영혼을 삼켰기에
그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갈 것이다

삼베옷 한 벌 걸치고
사각 우주선에 승선하여
불의 세계를 여행할 것이다

한 줌의 넋,
우주 어느 혹성에 도착하여
은하강을 일엽편주 노를 저어
그렇게 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끝없이 흐르는 은하강 물길 따라


         김광식 시인 프로필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 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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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부문]  추억의 새끼 곰이여, 안녕 / 차용국


 [독일 베를린을 가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에 그쳤다. 먹구름이 밀려난 북한산에 맑은 햇빛이 쏟아진다. 토실토실한 흰 구름 몇 점 떠 있는 멋진 서울 하늘! 비 온 뒤 서울 하늘은 이토록 눈부시게 청명한데, 아쉽게도 이 아름다운 하늘이 겨우 이삼일 정도다. 이후에는 미세먼지에 찌든 희뿌연 하늘이다. 그러기에 서울은 이삼일마다 비가 와야 한다. 어린이 속살 같이 해맑은 원래 서울 하늘을 기억하기 위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간다. 2018년 1월부터 대한항공은 그곳에서 운항을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커피 한잔 마시고, 키오스크에 셀프 체크인을 한다. 예약사항만 기계에 인식시키면 탑승권이 출력되니, 매표구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유용하고 편리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큰 일이 났다. 키오스크가 내 동료의 탑승권 발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니 항공권 상의 이름표기가 여권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동료 이름 중 ‘식’의 영어표기가 여권에는 ‘SICK“인데 항공권 예약에는 ’SIK’으로 되어 있었다. 황당하고 초조한 시간이 다급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동료는 이 난감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는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태연한 척 했다. 다행히 문제는 항공사에서 해결해주었지만, 비행기를 탈 때는 이런 부분도 세심하게 살펴볼 일이다.
 암스테르담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베를린 직항이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14시 5분에 이륙했다. 하늘에서 보는 서해의 섬들은 예쁜 모습 그대로 풍경이다. 올망졸망 앙증맞게 펼쳐진 멋진 수채화다.
 비행기가 구름 위에 올라탔다. 이제부터 길고 지루한 여정이다. 잠을 청했지만 쉬이 올 잠이 아니니 어쩌랴. 창밖을 본다. 시선 끝, 저 멀리 파란 하늘과 구름이 맞닿아 있다. 하늘과 바다가 자리를 바꾼 수평선 위에서 구름이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그러니 운평선이라 하자. 서해를 지난 운평선 위로 산맥이 뒤를 잇더니 어느새 사막과 설원이 연속 필름처럼 돌아간다. 다음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새로운 풍경을 기대하며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삶도 이와 같으리라. 적지 않은 고비를 건너와 생의 어디쯤 가고 있는지 돌아보며, 새로운 길에 들어설 때면 얼마나 가슴 벅찬가?
 깜빡 꿈길을 걸었나 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눈을 뜨자 음식냄새가 콧등을 스친다. 기내식사다. 비빔밥을 주문했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풀어 간을 맞추니 제법 맛나다. 식사를 마친 후 기내는 소등 상태에 들어갔다. 내가 창문을 보고 있자 승무원이 다가와 닫아 달라고 한다. 그래, 식사도 하였으니 한 숨 눈을 붙이자.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7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서 꼼짝 없이 갇혀 있자니 답답하고 엉덩이도 아프다. 몸도 풀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창 쪽 자리에 앉은 내가 복도로 나가려면 옆에 있는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내주어야 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있다. 그들도 지루하고 피곤하긴 나와 다를 바 없을 텐데, 나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귀찮을까? 조금 더 참고 기다리자 다행히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복도로 나와 몸을 푼다. 문득 시계를 보니 서울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비행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고, 체력도 인내력도 바닥이다. 고문 중에 상 고문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좁은 공간에 하염없이 앉아있게 하는 것.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현지시간 오후 6시 55분. 서울과는 7시간의 시차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 오후8시 45분 예정인 베를린 행 비행기는 20분이나 지연되고 있다. 암스테르담 공항의 운영 시스템은 그다지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다. 출발 예정 시간에 맞추어 탑승절차를 마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출발 시간이 지났고 승객들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공항의 탑승절차는 느리기만 하다.
 드디어 베를린 공항에 도착했다. 15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열어 놓은 창문을 스치는 밤바람은 시원하고, 거리는 한적하다. 고즈넉한 중소도시의 밤풍경이다.
 아침 6시. 일정부터 살펴본다. 유엔정보통신기술협력 심포지움 첫날의 일정은 참가자 등록과 간단한 자기소개다. 티어가튼 공원을 가로질러 전승탑을 보러간다.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흔들며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전승탑은 프로이센 시대의 건축물이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 승리 기념물로 하인리히 슈트라크스가 1864년부터 1873년에 걸쳐 지었다. 원래 독일제국의회 의사당 앞에 있었던 것을 나치가 193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탑 꼭대기에는 프리드리히 드라케가 조각한 승리의 여신상이 금빛 찬란하게 서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기상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탑을 내려와 회담 장소로 간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다. 회담장에는 각국에서 50여명의 인사들이 왔다. 유엔이 오픈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지형정보시스템을 만들어 국제평화유지군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서이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러 갔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가 동쪽을 향해 달려가는 조형물을 장식한 문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 문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지원으로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가 설계하여 1788년부터 1791년에 걸쳐 지었다. 문을 지나는 순간 바람이 뒤통수를 홱 후려친다. 나는 격한 감동과 아쉬움으로 바람을 본다. 바람은 위대한 독일을 당당하게 자랑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뿐.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냉전의 시대, 분단된 독일은 이 문을 통해서만 동, 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문은 동, 서 베를린의 경계였고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독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1990년 통일을 이루었다. 이제 이 문은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변신했다. 얼마 전(2018.4.27.)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고 휴전선을 넘어 남, 북을 오갔다. 판문점이 이 문처럼 위대한 통일 한국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간절하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훔볼트 대학을 지나자 베를린대성당이 있다. 1747년에 지은 이 성당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신비로운 하늘색 돔 지붕과 검게 물든 벽면은 오래 묵은 세월의 신비로움까지 더해준다. 이 성당은 월래 호엔촐레 가문의 묘지로 사용하기 위해서 지었다. 삶과 죽음이 경계를 따로 두지 않고 한 공간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하나보다.
 성당 앞 넓은 잔디 광장에는 시민들이 휴식과 놀이를 즐기고 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 평화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광란의 시대가 이곳을 그냥 놔두고 지나칠 리가 있었겠는가? 나치는 이곳에서 연일 선동 시위와 퍼레이드를 벌였다. 불행한 과거의 역사였다. 지금의 독일은 그 시대의 과오를 철저히 사과하고 극복하면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있다. 그들은 잘못을 참회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지킬 의지가 있을 때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진실을 실천하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유엔 정보통신기술협력 심포지움에서는 평화 유지를 위한 도전 요소와 정보통신기술 활용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지금 인류는 기술문명의 초고속 발전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기술을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다. 이런 관점에서 유엔을 중심으로 기술이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다각적인 시도는 시의적절하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베를린은 쌀쌀하고 우울하다. 맑고 따뜻했던 어제의 날씨와는 대조적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어제는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짧은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공원 잔디밭에서는 아예 옷을 벗고 햇볕을 받으며 누워 있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이곳이 북반구 가까운 쪽에 있어서 사람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는 줄만 알았다. 이 생각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오해였다. 베를린은 맑은 날씨가 그리 많지 않아서 사람들은 햇볕이 쏟아지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긴다고 한다.
 오후에 독일 국방부를 방문했다. 평화유지군 파견부대의 현지 이동형 통신지휘소 기술 시연을 보기 위해서다. 평화유지군이 파견된 지역 대부분은 정보통신 기반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지형, 전염병, 환경 등에 관한 긴요한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공위성 등 다양한 정보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장비를 현지에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시연은 빗속에서 진행되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준비하고 마무리한 장병들에게 감사드린다.
 시연 후 독일 국방부에서  준비한 리셉션에 참석했다. 식사를 겸한 칵테일파티다. 음식과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접시와 잔을 들고 작은 원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흑인 한 분이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키리바시 미국 대사 겸 유엔 대사라고 하며 명함을 주었다. 나는 키리바시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어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했다.
 키리바시는 태평양 서쪽 길버트 제도 쪽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섬나라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79년 7월에 자치권을 얻어 독립했다. 이런 오지의 나라는 정보통신기반시설이 열악하여 현대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도 경제력 격차와 유사하게 각국 간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유엔은 이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엔은 정보통신 빈국을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대사는 혼자서 두 직위를 수행하는데 보수는 한 직의 것만 받는다고 농담하며 환하게 웃는다. 유머 감각이 풍부한 멋진 분이다.
 서울은 온종일 천둥이 치고 비가 온다고 짝꿍이 카톡을 보내왔다. 올해는 서울에도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덕분에 봄 가뭄도 해갈되고 미세먼지도 해소될 수 있으니.
 일행들과 투어버스에 올라 주요 유적지 견학에 나섰다. 먼저 베를린 장벽이다. 장벽은 동독이 1961년에 서독으로 넘어가는  동독인을 막기 위해 쌓았다. 40Km에 이르는 담장이었다. 이후 이 담장은 동서 냉전과 분단시대의 상징물이 되었는데, 베를린 시민은 1989년 이 장벽을 해체했다. 그것은 곧 냉전과 분단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화합과 통일의 새로운 가치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베를린 시민은 그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독일과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존경받아 마땅한 위대한 시민이다.
 연방의회의사당 앞 넓은 잔디 광장은 각국의 여행객으로 붐빈다. 의사당은 1841년에 시작하여 1912년에 완공한 독일 제2제국의회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파란 많은 독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33년 나치에 의해 불타기도 했고,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손되기도 했다. 파괴와 복구의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통일 독일연방의회 건물로 안착했다.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버스에서 기다려야 했다. 도로는 온통 자전거물결이다. 인솔자가 자전거 축제가 있다고 알려준다. 누워서 타는 자전거, 수레 같은 자전거 등등 별별 자전거가 다 나와 도로를 누비고 있다. 베를린 시민들은 자전거를 많이 탄다. 어디를 가나 자전거 길이 있고 보관소가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평상시의 옷차림 그대로다. 한강변 자전거 길과 같이 특정 도로에서 특정 복장을 갖추고 타는 우리나라 자전거 문화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홀로코스트 추모관은 수백 개의 콘크리트 조형물이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궁금하여 관리인에게 물어보았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한마디로 보는 사람의 몫이란다. 무슨 이런 답변이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 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홀로코스트를 한 가지 해석과 느낌만으로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눈과 생각을 가지고 산다. 그만큼 삶의 가치와 방식도 다양하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며, 중간 경로이며, 종착지가 아닐까? 홀로코스트 조형물 너머로 아직도 갈 길이 먼 해가 노을을 그리고 있다.
 다음날, 독일 레지스탕스 추모관을 방문했다. 히틀러의 폭정에 저항한 사람들을 기리는 곳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국민선거를 통해 1933년부터 1945년 간 집권했다. 나치(NAZI)는 ‘NATIONALSOZIALISTEN(국가사회당)’에서 NA와 ZI를 따서 만든 합성어다. 독일 국민은 나치와 히틀러에게 정권을 주었지만 그들의 만행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지는 않았다.
 히틀러의 광기가 기승을 더하자 독일 국민은 저항했다. 저항에 참가한 사람들과 방법도 다양했다.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공유한 단체 소속 레지스탕스는 물론, 남모르게 개인으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도 많았다. 그들은 히틀러 암살 시도와 같은 직접적인 무력시위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암암리에 활동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연합국의 승리이면서 독일국민, 그들의 승리이기도 한 것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전쟁을 명령했다. 레지스탕스는 전쟁기간 중 히틀러를 암살하여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벌였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음모사건이다. 이 시도는 결국 실패하여 가담자 200명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그것이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당시 실존 인물 슈타우폰버그 역을 맡았다.
 한편, 나치는 유대인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작가가 쓴 책도 불태웠다. 600만 명이 희생된 대참사였다. 당시 독일에 살던 유대인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5천여 명은 탈출에 실패하고 수어 살았다. 그들의 처절한 삶은 ‘안네의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베를린에도 1,700여 명이 숨어 살았다. 그런데 그들을 숨겨주고 지원해주는 독일인들이 있었다. 발각되면 처형을 면치 못하는 데도 말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실재 인물 오스카 쉰들러와 같은 사람들이다. 추모관에서는 그들을 ‘조용한 영웅(silent heroes)’으로 기리고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에 갔다. 베를린 대성당 옆에 있는 이 박물관은 알프레트 메셀과 루트비히 호프만이 설계하여 1910년부터 1930년에 걸쳐 지었다. 이 박물관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꽃피웠던 수메르와 바빌론의 찬란한 유물들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그 시대에 이렇게 현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이 시대의 가장 혹독한 시련과 혼란을 겪고 있는 그 지역에서 살았던 그들은?
 유엔 정보통신기술협력 심포지움이 공식만찬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만찬은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해서 9시가 훌쩍 넘어 마쳤다. 해도 이제야 노을을 만들고 있다. 위도가 높은 베를린의 하절기, 낮은 길고도 길다. 온종일 그 여정을 마친 해가 고단한 발을 주무르며 잠자리를 펴고 있다. 나도 따라 잠자리에 든다. 베를린 출장 마지막 밤에.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벌서 날이 밝았다. 짐을 정리하고 귀국을 위해 베를린 공항으로 간다. 그곳에서 파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한다. 또 다시 길고 지루한 여정이다. 하지만 어찌 귀향길을 고달프다 하겠는가? 내 마음보다 느린 비행기가 야속할 뿐인데......
 원래 베를린은 슈프레이 강이 흐르는 어촌이었다. 이 지역은 슬라브계 밴드족이 살고 있었는데, 12세기에 알브레히트 곰(Bear) 백작이 들어왔다. 베를린이라는 말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다. 여기서 베를린이란 새끼곰을 뜻한다. 물론 다른 설 도 있다. 이곳에 살덩 원주민이 ‘물기가 많은 땅’을 베를린이라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떻든 베를린은 물도 많고, 거물이나 거리 곳곳에 배가 볼록하게 나온 귀여운 새끼곰 조형물도 많다. 호돌이가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되었듯이 베를린의 마스코트는 귀여운 새끼곰이다.
 파리 행 비행기가 베를린 공항을 이륙했다. 창밖을 본다. 연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푸르른 베를린 풍경이 한 폭의 시화가 되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새끼곰이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추억의 새끼곰이여, 안녕!


         차용국 수필가 프로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사회학 석사), 국가공무원 재직
           샘터문학상 본상 최우수상 수상, 한양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별빛문학 시조 신인문학상
           별빛문학상 이 계절의 상 수상, 문학신문 신춘문예 금상 수상, 대한교육문학상 우수상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     ©김성기

    

 

 

제 4 회 당선작

                     컨버젼스 감성시집 【아리아, 자작나무 숲 – 시가 흐르다】
                                             【사립문에 걸친 달그림자】

 


[시 부문]  가을이다 / 변화진


단풍은 외로움 속에서 홍단으로 물들고
가을은 허허로움 속에서만 석양으로 불타는 것
추월색은 부모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달로 비추고 달이 바랜 별빛 한가위 달에 곡식으로 익어가고
홍안의 짝사랑은 허허로운 단풍 앞에서만
노을로 불타고 여름을 건너 온 강물 속에서만
물고기 살찐다

어느 술동네 시인의 술잔에서
빗소리 서럽게 들리기 전까지는 아직 가을이
온 것이 아니다
가을 빗소리 서러워져야 비로서 가을이다
가을이 온다
아아 그리운 가을이 온다

가을은 그리움 속에서만 설렘으로 반짝인다
가을은 외로움 속에서만 단풍이 든다
가을은 연인들의 그리움 속에서
단풍으로 물들고 중년의 허허로움이
노을 앞에 서면 가을임을 확신하는
어느 술동네 시인의 술잔에서 빗소리가
서러우면 비로소 가을이다


         변화진 시인 프로필

           대구영신고등학교 ‧ 계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전) 삼성그룹 근무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출판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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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새벽은 그렇게 떠났다 / 황세종


새벽아 더디 오거라
내 옆에 있는 그 누구를 보내기 싫어서도 아니고
그냥 잠시 이슬이 눈가에서 머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기에
그저 사랑이기에

밥그릇만 번드르하면 뭐할까
고통이 가득한 빈 밥통
배고파 슬픈 주린 뱃가죽 사랑으로만 채울 수 없으니
아픈 사랑 한 많은 이별일 뿐
내 각시 심장 속 박동소리 훌쩍훌쩍 술 고파
구구절절한 고 삼 딸, 입시에 췌장 상처
구구절절 쩐 타령

오호라
인심도 사랑도 배움도 대출 쩐도
무심한 방관자 되어 삼십육계 도망가네
희망도 행복도 측은지심도
당신도 가을도
새벽에 그렇게 떠났다


         황세종 시인 프로필

           서울 마포 출생. 대한민국 이벤트사 대표이사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호남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롯데마트 경영직 임원, 롯데백화점 경영직 임원
           광주교도소 재소자 웃음치료 강의, 개인택시 사업자(15년)
           웃음치료 강사, 펀 경영 친절서비스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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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건드릴 수 없는 생각 / 임정윤


초록의 동산이나 나무도 없는
스레트 지붕이 하늘을 이고 사는
언덕배기 동네,
하늘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붉은 흙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

신 시장에서 쌀집을 하던
장군네 아부지가 이승을 등졌어
다음날엔 또 옆집 아제가 잠시 마실 나왔다
돌아가는 것처럼 너무도 조용히
어미의 자궁 속 모천으로 회귀 하였어

그리고 멍울진 연민의 피들도
영혼들 따라 줄줄이 길을 떠났어
두려움이 열린 하늘을 닫아 버렸어
스레트 지붕도 입을 다물어 버렸어
죽음이 생각마저도 건드릴 수 없게 했어


         임정윤 시인 프로필

           안동대학교 동양철학과 졸업
           안동대학교 대학원 국문과(현대문학, 시) 수료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편집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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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세월이 오백십팔 번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 정정기


세월은 아직도 무언가를 찾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이 두리번거릴 때
사람들 사이로 민주가 타야할 518번
시내버스가 망월동 쪽으로 달린다

잃어버린 세월의 무덤 앞 말라가는
국화꽃 위에 먹이를 찾아 나선 시간이라는
놈이 내려앉는다
배 불릴 수 있는 탁주 한 잔 없는데도
세월은 여지껏 무덤가에서 떠날 수 없었다
놓쳐버린 시내버스 탓하기 전에
주머니 속 동전이 행방불명 될 때
눈 감지 못한 세월 속 주검이
애써 감추었던 아픔과 울분이 쓰디 쓴
소주잔에 눈물로 채워진다

배고프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세월은 아직도 허름한 대포집에 시간을 앉혀 놓는다
무덤 속 민주가 외로이 홀짝거리는 것을
차마 내버려둘 수 없어 세월은 오늘도
시간과 함께 518번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정정기 시인 프로필

           광주광역시 거주
           자영업 대표
           샘터문학상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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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가을 편지 / 김춘자


오색단풍에 편지를 써서
갈바람에 띄워 보낸다

황금들녘에 수확하러 가자고
아직은 푸른빛이 감도는
고구마 넝쿨을 걷고
호미질을 해보고
손가락 장단도 맞춰보자고

하얀 이밥에 달콤한 꿀 고구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달을 한다


         김춘자 시인 프로필

           충북 보은 출생, 일산건설 대표 역임
           샘터문학 신인문학상(시 부문 ‧ 수필 부문) 수상
           효동문학상 우수상(충북여성문인협회)
           양성평등 글 공모전 대상 수상 (충북대학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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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그것 참 우습네 / 이혜영


그 인연 지금까지 내 인생에
서막일지 모를 터이다

웃고만 지날 수 없는 인연이
계속될 터이고

오늘도 꽃이 피고 꽃은 지리니
영원할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 인연 지금 어디쯤인가
내 꽃은 피었는가 지고 있는가
그것 참 웃웁네

 

         이혜영 시인 프로필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졸업
            자영업 경영(대표)
            극단성좌(아동극단)에서 연기 활동, 기타 극단 활동
            (사) 샘터문인협회 회원, 시서울 시밴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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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밤무대 / 고이순


촉촉한 달물 축이면 피어나는 달맞이꽃
은백의 달빛 겨드랑이 솜털 간질이면
한 마리 백학이 되어 사푼사푼 훠이훠이
밤무대 살풀이춤이 된다

중천에 둥실 떠오른 달덩이와 꽃별들
반짝반짝 오페라극장을 찬연히 비추니
잠자던 숲속의 미녀, 프리마돈나가 된다

여명이 오면 축제는 시들해지고
무대 뒤로 퇴장하는 달맞이꽃
밤새도록 그렁그렁 관객이 된 이슬방울들
동튼 새벽하늘을 보며 또르르 또르르
떼구르르 굴러서 퇴장을 한다


         고이순 시인 프로필

           전남 장성 출생
           서정대학교 사회복지 행정과 졸업, 서경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칼빈대학원 사회복지 석사과정 재학
           한국대 평생교육원 전통예절 지도사, 근대 황실공예문화협회 남양주지회 이사
           한국 스피치 ‧ 웅변협회 준비위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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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새봄의 서정녀, 매화 / 안승기


잔설 속에 초연히 피어난 너는
새봄의 전령사
해맑은 흰매실 많첩흰매실 많첩홍매실
화사하게 미소 짓는 햇무리 사이
순결한 절개와 고혹한 자태로
교정 모퉁이서 미소 향 짓는 너

풍운(風韻)과 냉담(冷淡) 신선하며
담백하고도 맑은 기운으로
향기와 춘휘(春暉)로 봄이 피어나고
속삭이고 사모하는 너
칠십 년간 예찬한
퇴계의 매화 시를 피워낸 너

고요한 시심이 심연이 물결칠 때
영혼이 녹아내리는 애틋한 너의 향기
봄바람에 실려 오는 너
밝고 맑은 심성을 지닌 제자들
참되고도 영롱한 눈빛에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심고 가꾸리라는 너


         안승기 시인 프로필

           안동 출생.   시인, 수필가, 문학박사, 목사
           창신교회 교육목사, 창신고등학교 교사
           경남한문교육연구회 회장, (전)한국교육자선교회 마산지역회 회장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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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꽃은 피어 향기로 말해 / 김용식


진실로 위대함을
전해주는 것은 침묵의 언어다
너 영혼이 고독하거든
산으로 가라 하지 않았는가

사는 동안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가까이 혹은 멀리서 정주고 받으며 지내지만
달빛 아래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뼈마디에
톡톡 쏘는 고통쯤은 친구라는 한마디로
아픔은 이겨낼 수 있는데

혼자 이겨내지 못하고
등 돌아 눈물 훔쳐 닦아낼 때가 있을 땐
가슴으로 세상 보는 마음의 울림일테지

가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다 하고 사는 게 인생인가
약간 부족하거나 약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꽃은 피어
소리 없이 향기로만 말하는데


         김용식 시인 프로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학과, 법학과 졸업
           방송통신대학교 법률봉사단(무료법률)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월간시인마을 회원, 한국문단 회원, 한양문인협회 회원
           수변공원 가을클래식음악회 자작시 발표(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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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어머니, 내 어머니 / 홍경희


어머니 누워 계신 산소에
봄이 오면 새싹이 움트는데
어머니 숨결은 느낄 수가 없어라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 속에
대자연의 순리 따라 언제나 푸르건만
어머니 모습은 엊그제처럼 생생하고
세월은 깊어만 가노라

불초자식 장성하여 일가를 이루고
사위 손자 다 보았어도 어머니한테는
언제나 어린자식
아버지 되고 할아버지 되었어도
인자하시던 어머니 모습 그리워라


         홍경희 시인 프로필

           온수온돌 국가기술자격 2급, 청주시 자연환경보호 봉사활동(14년), 신협이사 역임
           시민백일장 특선, 미리 써보는 유서 입선 및 장려상, 어머니의 역할 장려상
           보은교육청 교육장상, 보은군수상(2회), 청주시장상 표창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제1 시집 “철없는 웃음” 등 총 9집의 시집 상재, 산문집 “우리집 기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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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그리운 몽산포 / 고동욱


꿈속에서 가 보았던 곳
천 개의 이야기와 만 개의 사연을 가진
몽산포

조개껍데기 숫자만큼
조수의 빈틈없는 방문에
세월의 깊이만큼 모래톱은 패이고
물새 발자국과 연인들 발자국이
한가로이 섞여 있다

차지도 따숩지도 않은 물 채워지고
파도소리 분주한 시간되면
바빠지는 사람들 틈에 내가 끼어있고
나는 그제서야 바다가 된다

노을빛 물든 솔밭 사이 빠져나온
바람과 내가 한 몸이 되어
끝없이 펼쳐놓은 해안선 따라 걷는다
아직은 서투른 듯한 연인들 속삭이고
나는 풍경과 속삭인다

이 아름다운 서정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호주머니에 담아
두고두고 꺼내보련다

저녁 설거지에 남정네 손 바빠지고
게으르게 빠져나간 물길 따라
이마에 박힌 조명이 따르고
여인의 조개잡이 호미질 바쁘다

어둠에 밀려 잠들지 못한 밤
꿈을 꾼 듯 포근한 밤
민낯의 새벽에도 꿈을 꾸고
부지런한 낮에도 꿈을 꾸고
아름다운 저녁에도 꿈을 꾸고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참으로 이름도 고운 몽산포
너는 우리들의 꿈


         고동욱 시인 프로필

           울산 고래문학회 사무국장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송설문학 회원, 백제문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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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내가 가야하는 길 / 한 대상


지금 나의 가는 길 내가 가야할 길
희뿌연 안개 속에 묻혀 보이질 않아
지금 나의 가는 길 내가 가야할 길
무섭고 두려워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어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노래하며
무슨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순 없지만
이젠 일어서서 박차고 일어나
가슴 벅찬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

이젠 달려가고 싶어 내가 가야할 길
이 뜨거운 가슴에 맑은 영혼을 품고서
이 뜨거운 가슴에 시린 사랑을 안고서
노래하고 싶어


         한대상 시인 프로필

           이탈리아 F.Torrefranca국립음악원 졸업, 이탈리아 Accademia internazionale Di Musica
           Roma Accademia 졸업, 연세대학교 고음악과정(바로크 성악) 한국합창지휘자아카데미 수료
           테너, 작곡가, 이천코랄 상임지휘자 및 음악감독, 프로성악팀 <더노이솔리스츠>단장
           (사)한국음악협회 이천시지부장 역임, (사)한국예총 이천시지회 이사, 서희희망포럼 자문위원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예술분과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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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빛바랜 책갈피 속의 추억 / 전경호


책갈피 빛바랜 작기장 낙서
지난 세월 뒤돌아 볼 그 무렵
까맣게 잊고 살았던 추억의 뒤안길
넘길 때마다 빛바랜 작기장엔
애써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들이
그 옛날 증기기관차 연기처럼
세월을 상징하듯 기적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져 쫓아온다

단풍잎 책갈피 속은 변치 않고
곱게 책꽂이에 꽂혀있건만
춥고 배고파서 얼룩진 흔적들은
그 무게만큼이나 다가오고
임 생각에 잠 못 이루던 밤
등잔불 그을음 냄새에 취해버린 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부림치던 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희미한 기억들
하얗게 바래 책갈피 속에 숨었다


         전경호 시인 프로필

           군무원 3급 역임
           건축업(대표)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한국문인그룹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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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그 빛 / 이복남


빛은 천지를 밝혀준다
어둠에 장막을 뚫고 들어가
밝게 해주는 빛

어둠이 깔려있는 마음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밝혀주는 빛

세상천지를 밝혀
광명의 웃음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밝은 빛

나는 그 빛의 원소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누구를 위해 빛을 밝힌 적이 있는가


         이복남 시인 프로필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이야기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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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지금처럼 사랑하게 해 주세요 / 이명희


다른 그 무엇도 필요 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 마음 움직이지 않게
그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잠들지 않은 새벽
간밤의 이슬이 풀잎에 맺혀 있다가
아침 햇살 간지럽힐 때 빛나는 그 이슬의 영롱함을 간직한
그 마음처럼만
그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내 사랑이 지금처럼 그리워질 때
그대가 내 곁에 있든지 없든지
지금 간직하고 있는 그 마음처럼만
그대를 그리워하게 해 주세요

아지랑이 가물가물 굴절되는 빛이
가슴을 뚫고 내 심장을 향해 사랑을 물을 때도
나 메아리처럼 지금처럼만
그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염없는 그리움의 향기가
내 가슴에 파문이 되어 돌아오는 날
출렁이는 그 마음처럼만
그대를 그리워하게 해 주세요

지금처럼 사랑하면서 잊은 듯이 살다가도
문득 당신의 모든 것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지면 지금 내 모습처럼 달려가서
그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떠다니는 구름이 멈추어지는 법이 없듯이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구름처럼
멈추지 않고 세월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게 해 주세요


         이명희 시인 프로필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관리차장
           한국문인그룹 회원, 한맥문학 회원
           늘푸른문학 회원, 문학엔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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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산다는 것은 / 권영심


산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의 여정

캐러밴이 쉬는 어둠이 깃들면
낙타는 가혹한 짐을 내리고 무릎을 구부려
소금과 물을 마신다
고개 숙이는 낙타의 얼굴에 드리우는 짙고
긴 속눈썹에 맺힌 눈물

그 한 방울의 눈물이 낙타의 휴식
삶에도 낙타의 눈물이 있어 우리는 여정을 멈추게 될 때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지금은 쉬는 시간
새벽이 올 때까지는 괜찮아
다시 지게 될 짐이 더욱
온몸을 옥죄일지라도
지금은 괜찮아

삶은 사막을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의 여정


         권영심 시인 프로필

           부산 출생
           자영업(대표)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문예잡지 희망봉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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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햇살 품은 만산홍엽 / 정종수


햇살 품은 단풍 빛깔은 선명하고
아름다운 칠 색 빛을 내었다

산야에 불을 지피는 홍엽은 열정과 사랑을
동시에 이별과 연민을 안겨주는 가을의 선물이었어

가을날 선홍빛 따사로운 햇살은
자연이 주는 은혜로운 빛 이었어

낟알이 영글고 갈무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신들의 선물 이었어

가을은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기 위해
각가지 색채로 분장 하고 현란한 언어와 퍼포먼스로 마법을 부렸어

그런데 가을도 조락(凋落)에 아픔은
어쩌지 못하는지 빛을 잃고 슬퍼 보였어


         정종수 시인 프로필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대한문학예술협의회 회원, 종합문예 유성 회원
           문학에 바람이 분다 회원, 시를 꿈꾸다 회원, 인향문단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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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칼춤을 추는 그대의 미래 / 이기호

 

구글, 페이스 북, 카카오 톡은 어떨까
AR, VR, MR 속 모르는 기술조합의 언어들
가상과 증강, 혼합 현실도 모자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도 부족해
알파고도 충분치 않아 지능로봇도 미달이다
인조인간 욕심은 더 어떻게 진화할까
미래를 어떻게 보여줄까 
무얼 소개해줄까

우리들 세상사 마음껏 조롱한다
우리들 미래사 기술껏 우롱한다
세상 진화의 감성 신의 장벽 넘어
욕망의 덫을 넘어 따라잡을 수 없는 현란함
인공지능의 무한한 프로세스가
나날이 진화해 한껏 칼춤을 춘다

인간사 진화의 물은 흘러가고
세상사 흐름 속 변화를 풍류하는 구나 한탄하는 구나
언제 따라 잡을 수 있을까
가까이 하는 자, 세상을 주름잡고
멀리 하는 자, 그 옛날을 추억 한다

세월 흐름의 변곡 속에 나를 탓하면 무엇 하리
우리를 탓하면 무엇 하리
세월 흐름의 소용돌이 속에
삶의 무게와 그림자 두려워한다

하지만 휴머니즘이 최고다
마침내는 따스한 가슴이 최고다
그 완성의 유토피아는 인간성이다


         이기호 시인 프로필

           아호는 청심. 강원대 대학원 행정학박사. 송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삼척시 남양동 동장(역), 삼척시 관광정책과장 ‧ 기업투자지원과장 (역)
           지방서기관 명예퇴임. 국무총리 표창, 모범공무원 표창, 녹조근정훈장 서훈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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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만나면 반가운 사람 / 모상철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마음을 훤하게 한다
부담 없이 즐겁게 한다
주고받은 선물이 없어도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기뻐진다

손잡고 싶은 사람
웃음 보내고 싶은 사람
그가 따뜻하여 나도 따뜻해지고 싶다

눈길만 닿아도 정다워지는 사람
나도 그를 닮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한 대지를 딛고
한 하늘을 이고 살고 싶다


         모상철 시인 프로필

           고양시 거주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랑이야기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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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독도는 우리의 DNA / 홍영욱


배달민족이 오천 년 역사를
피로 써 온 한반도
이 땅, 대한민국에 태어난 지 오십오 년 만에
우리나라 최동단을 의연히 지키는
그곳에 가다
눈덮힌 한라산을 처음 오를 때도
벌거벗은 백두산을 처음 올라
천지의 검푸른 물결 앞에서
만세를 부를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처럼
심박수가 빨라지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뱃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니
격정의 순간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
일 년마다 한 번씩 만나는 견우와 직녀도 이러진 않았을 터
오십 년 넘게 짝사랑 하던 님을 드디어
내 눈 앞에 둔 심정

가슴이 가슴이 떨린다
가슴이 설렌다
첫사랑 성전에 다가가는 것처럼
가슴이 뛴다

신들의 축복인가
그곳으로 가는 뱃길이 이리 평온한가
기관사는 날씨가 이럴 수는 없다고
지금 여기는 바다가 아니고
호수 같다고 흥분해서 열변을 토한다

울릉도 도동항을 떠나 독도까지 이백 리를
두 시간 넘게 달려가는 독도사랑 호,
그 배가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험하기로 유명한 동해 파도라도 쳤다면
내 심장이 이렇게 요동치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감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동도에 접안하고 독도에 발을 디디니
감동을 담으려 수 백 명이 셔터를 눌러댄다
태극기를 들고
단체별 플랭카드를 들고
‘독도는 우리 땅’ 노래에 맞춰 군무를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주어진 이십구 분의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강종강종 뛰면서
다시 못 올지도 모를 동도와 서도를
눈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독도 바위를 보니 본토와 완성도 율이
팔십 프로 이상이다
씨도둑은 못한다는 옛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손대면 부스러질 듯한 섬세한 모습
바라만 보다가 안타까워하며
전경의 호각소리와 기관사의 확성기 사이렌소리에 떠밀려
배를 타는데
아무도 독도의 흙을 밟아보지 못했다

모두들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콘크리트 바닥 위를 동동 구르다가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전경들의 거수경례에 손을 흔들어준다

동도 서도가 까만 점으로 보일 때까지
스마트 폰으로 찍고 또 찍어서 담아본다
마음 속 다짐과는 달리 남은 생애에
독도에 다시는 못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멀어지는 독도가 더욱
애틋하게 나를 붙잡는다

다시 못 와보고 생을 다 하드래도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 땅이니까

우리 독도는
한반도가 써 내려온 전설이며
선조들이 지켜온 거룩한 역사이며
우리 백두대간의 혈맥이고
백 프로 순수한 대한의 DNA이니까


         홍영욱 시인 프로필

           인하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광고학 석사
           (전)제일기획 근무, (현)퀸벨애드 CEO
           인하문학상 가작(수필), 인하문학상 우수상(소설)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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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삶과 죽음 / 김홍중


용광로의 붉은 쇳물은
내 몸을 갈갈이 분해해 녹여 버렸다
남아 있는 건 오로지 마음 뿐

노을은 삶과 죽음의 전령사
핏빛으로 물들이며 마음까지도
어둠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빈손으로 태어나고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하늘 끝과
땅 끝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까맣게 타 들어가는 남아있던 나의 삶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
식히고 싶은 생각뿐

죽음을 부르는 통곡의 심장 소리는
더 이상 채워질 공간이 남아 있지 않다

죽음은 삶을 어느 순간
처절하게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남은 것은 허무뿐,

잘 가게나, 삶이여
잘 있게나, 허무여

나의 사유는 평온을 느끼며
깊은 수렁 속으로 스며들었다


         김홍중 시인 프로필

           건설업(도장, 방수) 대표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관리부장
           한국문인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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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삐비꽃 필 무렵 / 김은숙


구불구불 한 뙈기 두 뙈기
다랭이 논들 지나서 편편한 논둑이 나오면 아비는
지게위에서 아이를 내려 놓는다

“여그서 놀고 있어 잉
이놈은 이렇게 껍질을 배껴가꼬
희건 속만 먹으면 맛난 것이여”

지게 앞으로 단단히 매달려 따라온
트렌지스터 라디오에서 쑥 기어 나오는
“쑥대머리 귀신 형용”
머리 풀고 부르는 춘양이 가락에
으스스 거무죽죽 애간장 녹아들고

질퍽질퍽한 논 속 보였다 사라졌다
다시 보이는 아비의 머리칼은
하얗게 피어 휘날리는 삐비꽃이다

언덕에 앉아 하염없이 나는 눈을
감았다  뜨고 또 감고를 되풀이할 때
희고도 달큰한 세상이 입안에서
아비 사랑으로 녹고 있었다

※ 삐비 : 삘기(띠의 애순)의 사투리


         김은숙 시인 프로필

           정읍 출생.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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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인생은 마라톤 / 김광수


여보시게나 친구야
인생길을 왜 마라톤 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아시나?
그 먼 길 숨 가쁘게 힘차게 달리기도 하고
속도 조절해 천천히 달리기도 하니 말일세

여보시게나 친구야
숨이 턱턱 막히는 깔딱고개 같은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줄줄 미끄러지는 내리막길도 있고
경쾌히 걷는 평탄한 길도 있다네

여보시게나 친구야
뜀박질 하다보면 가슴이 터질듯 해
도저히 더 이상은 못 뛸 것 같아
레이스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
죽으나 사나 좋든 싫든 걷든 뛰든
가야하는 길 아닌가?

여보시게나 친구야
어떻게 가는 길이 좋은지
지혜로운 것인지 일러주거나
도와주지 않겠나

여보시게나 친구야
인생에는 예행연습도 없고
가로질러가는 지름길도 없으니
끝까지 치열하게 가야하지 않겠나?
인생은 장거리달리기이니까
길고 긴 끝장이니까


         김광수 시인 프로필

           (전) 감사원 근무, (전)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근무
           (전) 한국폴리텍대학 학장, (사) 대한민국전통기능전승자회 고문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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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파주 기러기 떼 / 박수연


올해도 어김없이 늦가을 파주에는 
잿빛 기러기가 하늘을 메운다      
수천, 수만리 이정표도 없는 하늘을
그들의 세포에 기억된 지남철에 의지해
날고 날아 한 치 오차도 없이
같은 장소로 돌아온 그들이다

나는 그들의 갈갈거리는 소리에 집을 뛰쳐나가
손을 흔들며 달려간다
빠른 속도로 시야를 가르며
벼가 사라진 황량한 들판에 일제히 내려앉는 그들,
이삭줍기를 한다
경이롭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AI로 닭들이 죽어나가면서
사람들은 철새를 반가워하지 않는다
반갑기는커녕 불안이 엄습 한다

그들의 이동비행은
수 천 수만 년을 반복해온 그들의 정체성이다
질병은 늘 있었고 때로는 희생이 생기고
약간의 닭들이 죽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옛 사람들은 안부를 전해주는
그 우체부들을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닭의 육과 알을 탐하는 우리,
생명도 한낱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한 뼘 공간에 볼모가 되어
밤낮 켜놓은 전등불에 알 낳는 기계로 전락된 존재들
그 존재들이 역병에 맥없이 쓰러지는 게 비정상일까?
너와 나,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걸까?

수 천 수만 년을 반복해온 갈갈거리는
그들의 삶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들이 토해내는 오염물질에 이미 그들은
내성을 키워 적응해가고 있다
다마, 인간들이 볼모로 잡은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만이 자율적인 내성을 키우지 못해
치명적인 역병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가ㄹ가ㄹ가ㄹ 갈갈갈
오늘도 파주에는 떼 지은 기러기들이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질서정연한 대오로
청명한 하늘 잿빛으로 물들이고
기억의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려앉고 있다


         박수연 시인 프로필

           경남 남해 출생
           서울사대 역사교육과 졸업, 중학교 교사 역임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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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불효자는 웁니다 / 김귀석


당신의 허리를 휘게 하고
시름에 주름이 깊어졌는지
어릴 적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셨던 깊고 깊은 사랑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때론, 회초리를 드시던
떨리던 손과 화난 모습이 아련한데
주름진 고랑에 불효의 무게를 얹으니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얽매인 삶을 풀어 놓으시고
잃어버린 인생 찾으셨으면 좋으련만
내리 사랑만 주시고 먼 여행 떠나신 당신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식 잘되기만 바라시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오시는 오늘 밤

너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김귀석 시인 프로필

           서울 출생. 성동고등학교 졸업
           자영업 대표
           (전) 부산MBC방송 근무, (전) 부산CBS방송 근무, 프리랜서 프로진행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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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나는 모릅니다 / 송태종


나는 모릅니다
그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에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대 그리운 마음에
심연(深淵)의 비가 내리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대와 사랑하는 밤엔
내 가슴의 꽃별이 피는지


         송태종 시인 프로필

           농사 경영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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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산수유에 얽힌 추억 / 권숙희


널찍한 텃밭을 품은 고향집은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산수유나무
수십 그루가 담장으로 둘러앉았다

앞마당엔 둥근 화단을 감싼 연못이 있는데
늘 그곳엔 파란 하늘이 내려와 있었고
계절마다 피는 꽃 그림자로 평화로웠다

산수유는 몸치장보다는 먼저
사랑이 급한지 잎보다 먼저 서둘러 꽃을 피워 벌 나비를 불러들인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지만
연노랑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격정의 꽃을 피워 맘을 설레게 했다

여름이면 아기 손바닥 만 한 오종종한 잎사귀들이
겹겹이 너와지붕 같은 층을 이뤄
짙은 그늘로 땀을 식혀 주었다

가을 되어 열매가 붉어지기 시작하면
용돈이 궁하던 아이들은 설레기 시작했다
기계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한약방을 운영하시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나무위에 올라가 산수유를 따오면
일일이 되로 재서 돈으로 환산해 주셨다

용돈을 벌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는 것이 즐거웠고
불어나는 열매가 소득이 따르니
신명나는 일 이었다

산수유 수확으로 가을이 깊어가면
어른들은 그 산수유 씨를 일일이 발라내는데
과육이 탱탱할 때부터 농익을 때까지 했다
그러다 보면 씨를 발라내 비어있는
산수유 속으로 어느새 겨울이 와 있었다

아버지 머리는 무서리 맞은 듯 허옇고
텃밭 일도 힘에 부치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산수유나무 담장 간격이
많이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 손때 묻은 한약장 그대로 있고
응급환자 숨 트여주던 침통도 자리를 지키는데
베어난 자리 새순 돋아 꽃을 피우기를
여러 해,

올해도 노란 산수유 꽃 물결을 이루면
나는 또 아련한 추억 속에서
산수유를 되로 재서 용돈을 주시는
아버지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권숙희 시인 프로필

           경북대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석사과정 재학
           경희대평생교육원 출강, 송파문화회관 출강, 동대문복지관 출강
           (사) 대한웅변인협회 사무부총장, 전국웅변스피치대회 심사위원
           (사) 색동어머니회 동화구연가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전국웅변스피치대회 통일부장관상 수상, 국회의장상 수상
           경기청소년신문주최 스피치교육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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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원두막에서의 추억 / 박길동


 참외밭에 개구리가 뛰어놀고 호박도 뒹굴고 밀(줄)참외, 김 막하 노란 성환참외가 함께 놀고 있으며 그 옆에는 수박과 오이가 가족이 되어 살을 섞고 더불어 살고 있다.
 네 기둥에 고깔 밀짚모자를 씌우고 송목으로 마루 놓고 그 옆에 멍석이나 덕석을 깔아 방을 만들고 사방에 대문 겸용 벽이 설치된 아담한 이층집 원두막이다. 아래층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부근에 모닥불 피워 모기를 쫓아내고 한 귀퉁이에 소변통이 놓여 있어 집안에 구색을 갖춘 꼴이다. 이층 마루방 귀퉁이에는 망태를 걸어놓고 참외 딸 적에 어깨에 메고 주워 담는 도구로 편리하게 부려 먹는다.
 낮에는 아버지께서 다른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가시고 학교에서 돌아온 오후, 토요일 일요일 낮과 여름방학 기간 내내 나 혼자 숙제를 하며 머슴이 되어 참외 밭과 원두막을 지킨다. 어쩌다 지나는 손님 원두막에 들러 쉬어가기 청하며 참외를 사서 먹을 때는 안면에 미소를 머금고, 망태를 어깨에 메고 밭에 나가 개구리참외가 좋을까 호박 밀 참외가 좋을까, 아니면 김 막하 노란 성환참외가 좋을까, 생각하며 골라잡아 꼭지와 몸 색깔로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구분하고 엄지와 중지 모아 통통 튕겨 맑은 소리가 나면 잘 익은 참외로 따서 손님께 칼과 함께 주어 참외를 깎아 먹도록 한다. 아, 꿀맛이야, 라는 탄성 소리를 낼 때의 기분은 최고다. 입가에 미소 지으며 참외 값으로 삼백 환~오백 환을 받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기쁨이 충만하여 하늘을 찌른다. 아, 이런 기분이 원두막을 지키며 얻는 소득으로 인한 즐거움인가 싶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시고 원두막에 오셔서 함께 모닥불을 다시 살피시고 마른 쑥을 똘똘 말아 놓은 쑥방망이에 불을 댕기면 쑥이 횃불이 되어 밤이 새도록 안전하게 타면서 내뿜는 연기에 모기가 덤벼들지 못한다. 사방대문에 이층집으로 여름밤 나기에 시원하여 아버지와 함께 이곳 원두막에서 반딧불이 전사들 야광 빔을 밝히고 야간비행을 관전하며 밤잠을 종종 자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버지께서는 깊은 잠에 들지 않으시고 어린자식이 더울까 모기에 물리지 않을까 연신 부채질을 하신다. 철모르는 어린자식은 아버지 채취를 꿈속으로 느끼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깊은 잠을 자고 아침 먼동이 틀 무렵 일어난다.
 육십여 년 전 우리나라는 일차산업인 농경사회로 비닐이 생산되지 않아 비닐하우스 재배를 할 수 없으므로 노지 재배 뿐으로 씨앗 종자 개량산업이 초보적 단계로 대부분 재래품종에 의존하였다. 당시에 수확은 적었지만 맛은 현재 개량종에 비하여 월등히 좋았던 것 같다. 천구백 년대 후반에 이차산업인 제조업이 들어서면서 비닐 생산이 원활하게 되어 농작물 재배가 획기적으로 변화를 가져와 봄에 씨앗 뿌리고 여름철에 가꾸어 가을에 추수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비닐하우스에 의한 사시사철 전천후 다모작으로 재배 방법이 변환하게 되면서 종자산업도 발전하여 다수확 개량종으로 탈바꿈 하여 원종이 사라져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년층의 향수로만 남아 있는 사각사각한 배 맛, 시원한 개구리참외, 맛이 독특한 밀(줄)참외, 호박처럼 크고 둥근 속이 빨갛고 달은 호박참외, 어른 주먹 만한 꿀맛 같았던 김 막하 성환참외의 종자를 찾을 수도 없고 채산성이 안 맞아 재배하지 않으므로 천구백오십 년대에 향수를 누렸던 맛 좋은 참외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우리나라에서 우리 것이 멸종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섭섭함과 아쉬움을 금할 수 없으며 마음이 아프다.
 천구백칠십 년대 이후 세대들은 보고 듣지도 못한 낯 선 이름을 가진 참외 종자다. 개구리참외는 껍질이 토종 참개구리 문양같이 닮았고 밀(줄)참외는 줄이 선명하여 엷은 쑥색으로 속 씨알이 밀알 느낌이고 호박참외는 역시 거무스럼하여 호박처럼 크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환참외는 당시 성환 지역이 참외 주산지일 뿐만 아니라 종자 면에서도 맛 좋은 일본 종자를 수입, 김 막하 참외 재배 지역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성주) 아마도 현재 비닐하우스 재배 품종이 주종으로 명맥을 이어 오는 것 같다.
 당시 초 중학생 시절 여름철  유일한 간식거리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야외 캠핑을 느끼게 하는 원두막에서 주말과 여름방학을 보내는 장소로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저녁에 아버지와 참외, 수박을 따서 함께 먹으며 정담을 나누고 잠에 들 때 깊은 잠 못 주무시고 부채질로 더위 살피시며 모기를 쫓아내 편한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시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그립고 아버지 채취가 느껴지는 밤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재배했던 개구리, 밀(줄) 호박, 김 막하 노란 성환참외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명맥을 유지 재배하고 있다면 재배면적을 확대할 수 있게 하거나 품종을 복원할 수 있다면 지금 세대들과 함께 그 시절 우리 것의 맛 좋은 참외를 먹을 수 있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서 앞으로 농작물 종자를 우량품종으로 개량은 하되 가급적 우리 것의 종자가 보존되고 명맥을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잠시나마 천구백오십 년대 어린 시절의 원두막 추억을 아련히 되돌아보는데 아버지가 참외밭에서 망태를 메고 원두막으로 올라오신다. 아버지 하며 가슴에 안겼는데 울다가 깨어나니 꿈속이다.


         박길동 수필가 프로필

           아호는 석영(石英). 육군대학 연대장 역임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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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위대한 U턴 / 홍영욱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은 외친다.
“우리는 후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담쟁이도 성향이 그러하다. 그는 직진만 한다. 그것도 가능한 위로만 올라간다.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정점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놀라운 촉으로 그가 가야하는 곳 그가 목표한 그 곳의 실체를 보았다. 외줄타기를 끝내고 이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가 있고 다른 줄기와 다툴 일도 없는 평화로운 종점이라 생각한 그 곳이 시커먼 먼지가 쌓였고, 그 끝에 가면 또 끝을 알 수 없는 위로 직진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본능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운명대로 직진을 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나에게 다른 선택이 있는가? 깊은 고민에 빠진 그에게 뿌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뿌리가 SOS를 보내왔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이제 물을 위로 공급하기가 어려워 졌다는 것이다. 

 담쟁이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직진 본능의 운명을 거슬러 U턴을 하기로 한다. 다행히 아무도 가지 않은 외줄이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평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 곳, 정점을 버리고 자기 생명의 근원인 뿌리에게 가까이 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현명한 결정을 인간인들 쉽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U턴이야말로 주목받지 못하는 담쟁이의 결정이라 해도 자기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지금까지의 성과도 버리고 자기를 낮추고 자기의 갈 곳을 진정 깨닫고 자기의 근본이 뿌리라는 걸 알고 나서야 취할 수 있는 ‘위대한 U턴이 아닐까? 어쩌면 인생은 운전과 흡사하다. 파란 신호등에서는 직진을 하고 빨간 신호등에서는 멈춰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빨간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고 직진을 한다면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 사고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성과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지인들과 영원한 이별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운전 중에는 신호와 차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직진만을 고집하지 말고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좌회전이나 우회전도 하고 또 “위대한 U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U턴이 인생에 있어서 후퇴나 좌절이나 실패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자신에게 물어보자. 혹시 인생을 살아오면서 결정적인 U턴을 한 적이 있는가?


         홍영욱 수필가 프로필

           인하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광고학 석사
           (전)제일기획 근무, (현)퀸벨애드 CEO
           인하문학상 가작(수필), 인하문학상 우수상(소설)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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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부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공장, 초자아 / 이세송


 세상이라는 공장은 넓고 아름다우며 많은 것을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머물고 가는 자리를 만들어 편안하길 원한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라는 존재들, 자주적 생각의 틀을 만들어 행복도 만들고 불행도 만들며 분별의 선상에 머물면서는 나름의 후회도 생산하고 미움과 화풀이라는 쓰레기를 산란하며 작용의 자아적 자각을 못 하는 자리에 놓아두며 살아들 간다.
 지금도 생각의 공정을 돌리며 무엇인지 모르는 물건을 만들고 있는 공장, 평생을 돌리면서 얼마나 알고 만들어 쓰고 살까?

 ‘괴로워 삐거덕거리고 때로는 힘들어 철푸덕이며 프로세스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상태, 즐겁고 행복한 소스코드보다 상념 깊은 자아를 더 힘들게 하는 것, 저부(低部)의 인식과 부정적 에너지 발산으로 오는 혼돈과 정화되지 못한 감정들의 몸부림’ 이 모든 공정이 지금 현상계 존재라 자부하는 나의 공장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감정적 생각이 담는 부정적 인식을 비우고 아름답고 찬란한 자연의 순환이 담긴 세상을 열고 결실을 출고 하자.

 초목이 보여주는 태동과 생동, 생육을 읽을 줄 알고 하늘이 열어주고 바다가 가져다주는 빛과 공기를 품으며 서로 융합된 순수한 세상을 열어보자.
 자유로움을 행할 수 있는 전체의식에 공정이 연결되어 어떤 감정도 매임이 없는 인식의 문을 열어가자.


         이세송 수필가 프로필

           대구 출생. 아호는 자은. 한국불교태고종 금강산 유점사 경성포교원 불이성 법륜사에서
           덕암 큰스님을 증명법사로 혜철스님께 득도. 경북의과대학병원 불교법당 지도법사 역임.
           연꽃봉사단 후원회 회장 역임. (사) 한국불교교화복지선도회 이사장 역임. (현) 법성사 주지
           월간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샘터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수상, 국회의장 표창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저서 : 마음의 기다림, 상념의 숲길

▲     ©이정록

 

 


제 5 회 당선작

                      컨버젼스 감성시집 【시詩, 별을 보며 점을 치다】


[시 부문]  목비 / 김원


왜 다시 온다는 말이 없는가
안개가 지짐거리는 날
홀연히 나타나 감질나게 적셔 놓고는
산들바람 치마 속으로 숨어버린 너

늘 다시 온다
쨍하고 큰 소리 치는 해처럼 정의롭게 살아라
일침 놓는 번개처럼 바르게 살아라
소리치는 천둥처럼
번쩍 쾅쾅 두드리며 오라

봄바람 난 아낙네의 치마처럼
살랑거리며 다가서는 꽃바람처럼
마른 산하 어루만지며 오라
대지의 바싹 마른 가슴 널 원하는데
목 타는 심연(深淵)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데


         김원 시인 프로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 정치외교학과 졸업
           ㈜ 현대종합상사 재임, ㈜ 한라자원 재임, ㈜ 만도기계 해외사업부 재임
           ㈜ 위스티 대표이사 재임, 제19대 대통령선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언론 특보
           여의도연구원 중소기업소상공인분과 정책자문위원장, 서울시 합기도협회 부회장
           무궁화사자대상, 대한민국충효대상, 자랑스런한국인대상, 라이온스354-A지구 봉사
           표창, 서울시 합기도협회 표창,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기획이사 및 재정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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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치명적 사랑 / 김원준


여보오
까치가 울어요
새 하양 아침 등에 진
반가운 까치가 울어요

오늘은 맑은 아침을 드릴 수가 있겠네요
잠 덜 깬 눈언저리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 그대 창가에도
출렁이고 있겠지요

창을 열어봐요
기지개 켜는 햇살 가지에
그리운 내 마음 창가에 걸려있을 테니
고이 걷어 마음에 두르세요

지금 까치가 울어요
보고픈 모습 기다리며 까치를 봅니다
혹여 당신 소식 물어 왔나 싶어
눈빛이 간절합니다

두리번거리는 건
애틋한 그리움 찾는 거랍니다
맑은 아침이 섞인 사랑을 찾는 거랍니다
사랑합니다
죽을 만큼 사랑합니다
 지금도 그대 고백이 내 심장에
깊숙이 박혀 선혈(鮮血)이 흐릅니다


         김원준 시인 프로필

           아호는 해운. 부산 출생 울산거주.
           ㈜ 고려철강 재직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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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두 소녀 / 김선옥


첫날 눈을 뜨면 춥지 않았음 해
방금 만든 도라지 쨈에 고추 쨈을 바른
식빵을 먹을 거야
매끼 밥으로 입맛을 축 내긴 싫어

카운트다운의 시간
출발 전 머물러 있던 예닐곱 살 아이
잊고 있던 옛날 기억이 하필
토담에 이엉 씌워진 시골집이지

푹 내려앉은 부엌 아궁이에 왕겨를 넣고
풍로를 돌리고 있는 계집아이
타다닥 소리에 서나서나 사그라드는
불꽃을 살리는 일이었지
매콤한 연기에 눈물 훔치지만
아련하게 떠오르는 건 엄마의 빈자리
홀로 있는 무서움이었지

무쇠 솥이 걸려있는 따스한 부뚜막
고양이 세수하고 낮잠 자기 좋지
안방에 모셔져 있는
TV속 화면은 어릴 적 호기심과
두려움에 떨던 아이가 고전에 나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되었지

“한 살 묵으면, 이천이십 년 소녀인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살 더 묵으려는 소녀의 물음에
한 살 덜 묵은 소녀가 답한다

이만 오천오백오십 시간 나누기
삼백육십오 일은 일흔,
칠십은 칠순이지, 오래 묵으면 득도한다는데?

득도하지 못한 이천십구 년 소녀와
성급한 이천이십 년 소녀의 넋두리 선문답 오고 가는데
답답한 이천십구 년 소녀는  절대 계에 먼저 가 계신 신들께 물었지

“일 년 더 묵으면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인식의 문을 열려는지요?“

“나도 골 아파, 그쪽에서 니들이 쏟아놓은 미세먼지가 여기까지 날아와서
일 년 삼백육십오일 머리 아픈데 왜 묻지?“

 

         김선옥 시인 프로필

           청주대학교 시창작과 수료, 호수도서관 시창작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여백회 회원
           여백회 백일장 시 부문 입상
           시집 “꽃등” 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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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대합실 노숙자 / 이원희     


대합실 차가운 모퉁이에
어지럽게 깔려있는 발자국 베고
왜곡된 시선 아래서
고장 난 시계처럼 한 시절을 접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플렛폼을 관통하는 기차의 괴성이
서둘러 떠나자고 추격해 오는데
그의 부서진 삶의 파편들이
시간에 쫒기는 자
시간을 지배하는 자
시간을 초월하는 자
이들의 분주한 소매 자락을 붙들고
측은지심과 가파른 호흡을 붙잡는다

순간이 지배하지 못한 쉼표 하나
정지된 시계바늘이 시공의 경계를 가리키고
벌러덩 뒹구는 나태한 심신의 자유가
일터로 내몰린 존재들 숨을 고르고
심신을 다듬는다


         이원희 시인 프로필

           대전시 유성구 거주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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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할배 꽃상여 / 김영홍


할아버지 저 세상 가시는 날
사지 꼭꼭 묶여 오동나무 널 속
꽃상여에 실려 떠나가신다

마지막 발인제 마지막 막걸리 잔에
자식들 통곡 소리 산천이 떠나가고
꽃상여 하늘나라로 승천하신다

육남매 상주 뒤 따르고
만장행렬 산모퉁이 휘감고 돌아
이승의 서러운 고개 넘어 가시는
고인의 눈물 따라 줄지어 간다

꽃상여 위의 요량잡이 회심곡
가락과 핑경 소리 구슬프다

“어허 어허, 댕그렁댕그렁”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이제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소리꾼 메기는 소리에 상여를 메고 있는
상여꾼들이 받는다

“자라 자라 에헤 에헤 에헤 에헤 너화 넘자 너화 너”

구성진 가락에 따르는 자손들 조문객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할아버지 영혼을 달래는 요량 소리가
내 폐부를 파고 든다


         김영홍 시인 프로필

           MBC라디오 <싱글벙글쇼> 공모전 장원, 아침마당 <고마운 선생님> 방송출연
           KBS 아침마당 <출산의 비밀> 공모 장원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장려상, 효동문학상 공모전 우수상(푸른솔 문학)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시집 <노을> 상재, 수필집 <뾰족구두> <손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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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진실의 붓대가리 / 이선동


사해에 널브러진 가면들아
삼라만상이 개벽하며 바다를 뒤집고
노호(怒號)하는 울부짖음 들리지 않는가

바다의 여신들 성난 노대바람 일으켜
검은 파도를 뒤집어 절벽에 부딪치며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진실의 붓대가리는
어디에 처박혀 보이지 않고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가면의 붓들만
망나니의 칼춤에 놀아나
사해동포들의 눈을 베어 버리는가

동토의 얼어붙은 나목(裸木)들은
삭풍(朔風)과 사투를 벌이며
헐벗은 가지들 잠들지 못하고 흔들리지만
동틀 때 붉게 물든 파도 위 윤슬로 빛나는 해빙(解氷)의 햇살 찾아오리라

노호하는 바다의 파도야
성난 해풍아
그대들 울부짖음으로 훈풍을 불러라
헐벗은 가지 끝, 연두 빛 새순 위에 진실의 붓대가리는
희망의 시를 쓰리라


         이선동 시인 프로필

           필명은 이현수. 경북 구미시 거주
           영남고등학교 졸업, 경북외국어테크노대학 졸업
           구미시 법원 조정위원회 회장(현), 구미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역임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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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아침 냉이국 / 윤희숙


탄탄한 코끼리 다리처럼 대지의 심장을 딛고 하얀 눈 이불을 덮었다 
부엉이처럼 깜박이며 숨어있었다
삶의 윤택을 꿈꾸는 털보가 호미로 낚아
도시 늑대에게 팔았다

도시의 낯선 불빛에 기가 죽어 눈치를 보다가
태초의 욕심이 휘청거리는 승냥이 바구니에
팽겨 쳐 지듯 담겼다
       
얼고 헐어진 삭신을 뜨끈한 물에 시원하게 녹였다
시절 모르는 허한 주인을 만났더라면
찬물에 오솔오솔 삭신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허기진 된장 한술과 제철인 듯 날뛰다 어부에게 잡혀온 총알오징어와
봄 보자기에 묶었다
똥배를 한 짐 채우고 서슬 퍼런 전쟁터로
잔다르크처럼 칼을 차고 나간다


         윤희숙 시인 프로필

           충남 청양출생. 서울시 양천구 거주
           외식조리관광학 박사, 호텔조리과 교수, 조리 기능장, 조리명인
           <생생정보통> 요리 자문위원,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대한민국요리경연대회 국회의장상 수상, 농림축산부장관상 수상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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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어머니의 일생 / 정중섭


초겨울 달리는 차창 밖으로
움푹 패인 들판의 논고랑이 어머니의
주름살처럼 가슴에 꽂힌다

호미처럼 구부러진 허리에 매달린
육남매의 허기를 채워주신 세월은 위대함이요
문드러진 손톱 논바닥처럼 터진
손등의 상처는 고귀함이다

자식 먼저 보낸 부모를 부르는 호칭은 무엇일까
자식을 가슴에 묻고 천 갈래 만 갈래
찢긴 세월
한평생 멍에로 채우시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내뱉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셨을까

섬 마당 소나무 아래 앉아
한없이 뿜어대던 담배 연기는
묵언의 슬픔이었으리
가시는 길 마지막까지 남몰래
당신의 이부자리 밑에
꽃처럼 피워두신 노잣돈

“못 오냐”
그 목소리가 마지막일 줄,

그해 겨울 눈꽃향기 되어
승천하신 어머니


         정중섭 시인 프로필

           아호는 동륜. 시인, 사회복지사
           국립한밭대학교 회계학과(경영학 석사), 한남대학교 시낭송 마스터과정 수료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자목련 시낭송협회 부회장, 시낭송 지도사(1급)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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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모과 / 박동희


붉은 볼 달콤한 유혹 하나 없이
과일이라고 우기던 모과,
그 옹이진 가슴으로도
노오란 가을볕이 스며
남다른 향기로 여물 수 있음을
어찌 알았을까

지나던 발길조차
돌려 세운 제 향기에
지난 서러움 까맣게 잊은 듯
도리어 두런거리는
우리 일상의 푸념들을
따끈한 찻잔에 고루 담아
향긋한 그리움으로 엮어놓는다

먼 길 날아든 눈꽃 곁들여
긴 삭풍의 밤을
차곡차곡 접어가며


         박동희 시인 프로필

           울산시 동구 거주
           학점은행 행정학과 졸업, 사회복지사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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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연민 / 박승문


오늘, 하루만 걷고 싶었다
이유가 없이 바람을 버린 채로
무언(無言)에 갈망한 눈동자에 기대어
세상에 태어난
만 가지의 행보를 느끼고 싶다
견줄 수 없는 발걸음에 보인
측은한 마음에 도드라지는 것들
버림을 받고 있을지라도
오늘은 오늘은
걷고 싶은 사색이 고독을 채운다
먼발치에 굽은 소나무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준다
반갑다고 손짓에 꼬리표를 달고
바람에 방향을 가리키는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흔들린다
낯설지 않았던 만 가지의 행보에서
하나가 빠진
익숙했던 당신이 그립다
그새, 발걸음은 재촉도 하지 않는다
긴 세월,
무딘 마음만
하나가 부족해서 버린
---구천구백구십구,
후회와 연민이 교차하는 길에서
고독이 하루를 걷고 있다


         박승문 시인 프로필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 대한항공 근무, ㈜ 삼성중공업 근무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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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경칩 / 추원호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바위틈을 가르는 천 갈래 아침 햇살이
산야 모든 존재들을 깨운다
움츠렸던 허리 좌우로 시원스레 틀어보니
발가락 끝에 전율이 온다
봄의 기운이 흐르는가 싶다
무거운 눈빛으로 하늘을 들어보니
솜처럼 가벼운 걸 보니
해동이 된 것이리라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하늘빛 잡으려 펄쩍 뛰어오르는
아침나절이다


         추원호 시인 프로필

           아호는 제당. 전북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박사. 건축사 경영(대표)
           전주 비전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 역임, 우석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 역임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대한시문학협회 사무총장
           전국서화백일대상전 휘호대회 대상, 한국을빛낸사람들 대상, 대한민국경로효친 대상
           자랑스러운대한민국시민 대상, 전주시예술상(건축)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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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삼월의 비보라 / 곽재훈


잠결에 들려오는
들창 덜컹거리는 소리
거친 바람 우는 소리
세차게 내리치는 비보라 소리
잠이 깬 베란다는 창밖을 두들기는
빗줄기를 뚫고
칠흑 같은 어둠을 넘어오고 있는
아침햇살을 기다린다

저 멀리 어둠 속 공원 곧은 침엽수들은
짙게 드리운 머릿결로 엉킨 가지들은
정신 줄 놓고 바쁘게 동서남북 향해
뒤엉켜 흔들리고 떠나기 망설이는
꽃샘추위 거센 비보라 매섭게 내몰고
새봄의 서막이 요란스럽다
무명 아마추어 작곡가의 교향곡에 도취되어
음계를 이탈한 연주라도 하듯 불어대는
비보라는 선율에 취해 광란의 빗줄기를
정처 없이 쏟아 붓고 있다
틈새 비집고 들려오는 바람의 지휘자는
굳게 닫힌 창틀은 연주라도 하듯 흔들고
빗줄기는 세차게 두드린다

계절은 따스함을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듯
한바탕 요란한 계절의 추임새를 겪어야 새봄은 오는가 보다
내 마음엔 백목련 치맛자락 들썩이고
요요한 봄꽃들 향기가 진동하니
이미 새봄이 왔나 싶다


          곽재훈 시인 프로필

            아호는 도왕.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거주
            동부산대학교 장례행정복지학과 전공,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전공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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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비에 젖어 오는 봄 / 예병훈


봄은 비다, 비가 봄이다
칼바람과 눈보라
그 사이 헤집는 비는 봄이 되었다

비를 본다, 봄이 왔다
눈을 적시니 마음 또한 젖어들고
아스라한 때 여인의 유채빛, 눈빛 아래
봄은 속살거리고 있었다

사람이 힘들다는 지친 물안개 머리 결엔
파란 싹이 핀다
작은 몸 하나 숨길 틈이 없던
매서운 공기 속에 허둥대던 여린 손 끝에
아지랑이가 잡힌다

가끔은 내 곁으로 오지 않던
봄의 향취가 빗속에 있다
천리 먼 길 살아보려 내디딘
웃음 헤픈 소년의 때 찌든 발길 끝으로
초록의 어린 싹이 숨을 쉬고
거름 더미 속에 숨었던 굼벵이 곁에도
봄이 숨을 고른다

이제 마음껏 몸을 구부리거나 펴면서
큰 기지개로 대지를 누비라
대지의 맑은 호흡 낮게 드리워져
그대와 마주한 생명의 숨소리가 예사롭고
그 기운들 솔솔 일어나면

세상의 거침과 부리는 어깃장과
가슴의 아픔까지도 바람에 날려 아련해진다
비가 마음에 닿는가 적시는가
묻어 있는 봄 손가락 마디마디 매달려
날갯짓 팔랑이면
안에서 뒹구는 촌놈이 살갑다


         예병훈 시인 프로필

           대구대학교 법무부동산학 전공,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우체국 35년 재직 후 공로연수 중
           부산국제차문화제 시 부문 입선, 백산문예 시공모전 입선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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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쿠바의 바다 / 이정재


하늘이 푸르다한들 이 보다 더할 것인가
산이 푸르다한들 이보다 더할 것인가

푸르른 오월의 산과 시월의 하늘을 모아 풀어놓으니
쿠바의 바다가 되었구나

구슬이 맑다한들 이보다 더할 것인가
거울을 비춘다한들 이 보다 더할 것인가

신이 연단한 구슬을 모아
거울에 비추니 청경유수(靑鏡流水)라
맑디맑은 물속에 세상 귀한 보물이 다 비치는구나

옥빛 바다가 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태양빛이 닿아 황금물결이 출렁인다
고요한 마음도 일렁이니 진정하기 어려워라

쿠바의 바다여
그리운 헤밍웨이여
헤밍웨이, 난 그대의 씨앗이나니


         이정재 시인 프로필

           아호는 달밭. 충청북도 영동군 출생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경인교육대학원 졸업(영재교육 석사)
           성산대학원 졸업(청소년 교육학 박사)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인천 사리울초등학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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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봄노래 / 신성자


버들피리 삐리 삣삐리
봄을 부르니

잠자던 대지 기지개 켜네
잠자던 만물 새움 움트네

버들피리 삐리 삣삐리
봄을 부르니

시냇가 맑은 물 졸졸졸
봄을 노래하네

버들피리 삐리 삣삐리
봄을 부르니

아지랑이 아물아물 피어나고
꾀꼬리 노래하고 제비가 춤추며 봄소식 전하네

버들피리 삐리 삣삐리
봄을 부르니

봄 아가씨 푸른 너울 둘러쓰고
사뿐사뿐 걸어오네

약속하자네
올 한 해도 소망을 안고
꿈을 향해 희망의 날개 펼치고
저 푸른 하늘 높이
날아보자고


         신성자 시인 프로필

           경기도 남양주시 거주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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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전사, 삯 / 최창열


머리 속으론 원형의 구도를 그리고
때론 별처럼
어느 땐 점으로
마지막 최전방에서
한방의 승부로 끝을 볼 것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뜨거운 한낮은 나의 시간이 아니다
한밤중,
푸른 안광을 레이져 빔처럼 쏘며
비록 새앙쥐 한 마리 입에 물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허락된 이 숲을 지킬 것이다

새 한 마리 앞발에 눌러 찍어도
나는 웃지 않고
누구와도 겨룰 것이다


         최창열 시인 프로필

           필명은 이우형, 부산시 해운대구 거주, 부산동천고등학교 졸업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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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수련 / 이영렬


뿌연 연못 속
아픈 상처 감추고
서로가 서로에게 엉키어
둥글게 어우러져 핀 단아한 꽃

아침 햇살에
피어나는 자비로운 미소
날 보고 세상 더불어 살라는가

빗방울의 미혹에도 젖지 않는
그 순결함은 청빈하기를 바라는가

저녁노을 붉게 물들면
수줍어 얼굴 감싸는 애틋한
사랑의 꽃이여

목숨 다하는 날
추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차가운 물속에 내려앉은 의연함은
뉘 가르침인가

날 꾸짖는가
애달픈 달빛, 푸르고 푸르러라


         이영렬 시인 프로필

           서울시 성동구 거주
           경희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수료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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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강정보에서 / 한정규


태백줄기 어디메서 예까지 흘러왔누
갈 길은 멀어 천 리길
그리운 남쪽바다
차가운 콘크리트 물길을 막아도 가야지
넘쳐흘러가야지
강 건너 산마루 해가 설핏 기울면
삭아 내린 부들 밭
길 떠난 철새둥지 이슬 들기 전
쉬어라도 가야겠네


         한정규 시인 프로필

           대구 출생. 대구시 달성군 거주
           ㈜ 태원오토텍 공무보전팀 재직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흐름문학동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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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어머님 / 황윤기


혹독한 겨울 보내고
또 다시 복사꽃 향기 몽롱한
봄을 기다립니다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은
언제나 봄의 향연이었습니다

공들여 키워주신 은혜
시린 한파 낮선 바람 끝에서
철없이 떠돌았지요

당신의 그리움이
향불처럼 타오르는 것은
불효의 눈물이겠지요

손닿으시는 곳마다
아픔을 보듬어 치유케 하시는
정선읍 골지리 작은 옹달샘
윙윙거리는 바람 속으로
들려오는 당신의 소리

“아들아, 너는 나의 생명줄이다”


         황윤기 시인 프로필

           강원도 평창군 태생, 원주시 거주
           경북산업대학 졸업
           혁신자전거 대표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 나눔시낭송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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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동백 앞에서 / 김현미


이번 생의 의미와 무의미는
나눠보지 않아도 그만이겠다

새들이 붉은 석양을 끌고 저 너머
세상으로 훨훨 간다
건너편 세상에서 건너오는 새들도 있다

하늘과 땅은 지평선에서 만나는 중일까
헤어지는 중일까

뿌리는 땅속에서 생명을 키우고
가지는 하늘 향해 꽃잎을 펼쳐 보인다

주먹만 한 동백이 툭 지구 위로 떨어졌다
천둥 같은 고요가 허공을 밀어내며
파동을 친다

아무도 울지는 않아라


         김현미 시인 프로필

           필명은 자수정. 경남 창원시 거주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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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부문]  정월 / 신창석


초롱한 별빛 내려 찬 서리로 엉기고
붉고 큰 보름달이 언 땅을 굴러 간다
겨울이 깊어졌는데 봄은 아직 멀었나

어둑한 산 어귀에 앙상한 나목들이
불어온 찬바람을 죽은 듯 감내 한다
이 계절 지나고 보면 고난도 추억일까

눈 없이 추운 날씨 바람 끝 칼날 같다
경제도 얼어붙어 일자리는 귀해지고
젊은 꿈 조바심 안고 발걸음만 분주해

해묵은 시름앓이 다시 뜬 붉은 해를
신앙처럼 기대는 맘 스무날 새고 졌다
나목에 꽃눈 커질 때 시름도 떠나겠지


         신창석 시조시인 프로필

           경기도 안산시 거주
           국제스마트전시협회 자문위원, 로로아트플랜 편집장
           장생포 고래마을스토리 기획, 지역농협이사 역임
           (사) 샘터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수강, (사) 샘터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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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달변(達辯) / 이동신


 큰 고모는 돌아가셨지만 내게는 원래 두 분의 고모님이 계셨다. 사람에 따라서는 고모가 먼 친척일 수도 있지만, 3대가 한 지붕 아래에 살았던 옛날 우리 집에서는 고모들이 내게는 누나이자 어머니였다. 오히려 동생들에 대한 추억보다 고모들에 대한 추억이 더 많다. 큰 고모는 인자한 편이었는데 일찍 출가를 하셨고, 작은 고모는 깐깐한 원칙주의자였다. 어린 나는 개구쟁이 소년이었기에 작은 고모와는 늘 긴장관계에 있었다. 작은 고모는 시집을 가기 전까지 사사건건 나를 구속하고자 했고,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장난기와 호기심으로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수시로 요동치는 조카를 응징하기 위해 매섭게 노려보던 고모의 눈길은 지금도 생생하다. 고모의 눈에 나는 뭔가를 몰라서 겁도 없고 툭하면 말썽을 피우는 조카였다.
 내 고향은 높은 산 중턱쯤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 올라온 사람들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어김없이 낯익은 고추장수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동네 사람들과 가격흥정을 한다. 아이들은 사랑방에서 놀다가 어른들이 흥정하는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마루로 뛰어나와 구경을 하곤 했다. 장사꾼들은 고추 빛깔이 나빠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깎아내리기 일쑤였고 할아버지는 고추알이 굵고 햇볕에 잘 말린 태양초라고 역정을 내셨다. 정성을 다해 말린 고추에 대해서 장사꾼이 의도적으로 너무 깎아 내리면 때로는 화가 나신 할아버지가 고성을 지르며 장사꾼을 마당 밖으로 쫓아버리기도 하셨다. 어느 겨울날 나의 작은 고모가 처녀로서 아름다움을 꽃 피워가고 있을 때 혼사 이야기가 한참 오갔다. 당시는 처녀총각이 맞선을 보지도 않고 집안 어른들끼리 혼인서약을 맺기도 했던 터라 소문에 의지하고 평판에 맡겼다.
 믿을 만한 결혼 중매인의 말에 의하면, 멀리 영주에 사는 총각이 양반 집안이고 사람도 아주 좋다고 했다. 혼사 문제로 집안이 뒤숭숭하던 어느 날 오후, 낯선 고추장수가 저울을 들고 우리 집 마당에 나타났다. 이 장사꾼은 집안 고추를 둘러보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고추 값을 흥정하지 않고 우리 식구들 얼굴만 유심히 훑어보고는 그냥 돌아갔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이번에 온 고추장사는 얼굴이 검고 우락부락해서 소도둑 같다고 말씀 하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에게는 고추를 사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신랑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영주에 살고 있다는 양반 집안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언약을 했다. 퇴계 13대 손으로 자부심 높으셨던 우리 할아버지는 결혼의 첫째 조건이 인물보다 가문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짜를 잡으려고 신랑이 우리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 식구들은 깜짝 놀랐다. 보름 전에 우리 집을 다녀갔던 그 고추장사가 이번에는 신랑이 되려고 당당히 찾아왔던 것이다. 고추장사로 위장했던 부정직한 사윗감을 할아버지는 언짢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 할머니는 처음 볼 때는 소 장수 같았는데, 다시 보니 남자답고 믿음직스럽다고 흔쾌히 승낙하셨다.
 이보다 4년 전에는 큰 고모가 결혼을 해서 시골집을 떠나갔다. 울산에 사시는 큰 고모부는 마른 체형에 뛰어난 달변이 웅변가였다. 반면 작은 고모부는 체구는 컸으나 과묵하셔서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말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두 분이 만나면 이야기 궁합이 잘 맞았고, 언변이 좋으신 아버지까지 합류하여 셋이 되면, 새벽녘까지 술을 드시며 이야기꽃을 피우셨고 어머니는 술시중을 드느라 밤잠을 못 주무셨다. 이때 술이 취하신 큰 고모부 입에서 간간이 나오는 말이 영감이었다. 대낮에는 장인면전에서 “어른~요, 어른 ~요”하면서 아부를 하였고, 밤이 깊어 장인이 사랑방으로 건너가고 술기운이 더 오르면 처가 식구들 앞에서 호칭이 바뀌었다.
 ‘영감’이라는 말은 장모(할머니)가 주로 쓰는 말이지만 큰 사위가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주면 할머니도 후련하신지 재미있어 하셨다. 반대로 말수가 적고 점잖으신 작은 고모부는 술이 아무리 취하든 누가 뭐라고 하든 호칭이 항상 정중한 “장인어른”이었다.
 할머니는 개그맨처럼 재미있는 큰 사위를 만나면 웃기에 정신이 없으셨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작은 사위를 만나면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신명이 나셨다.
 큰 고모부는 대구 축신인데 도회지 사람답게 박식하였고 유머에도 능했다. 방학 때 큰 고모부와 유원지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낯선 아이들이 근처에서 뛰어노는 바람에 먼지가 크게 일자, “야, 이놈들아! 뛰고 싶으면 먼지 가 안 나게 다리를 어깨에 좀 둘러매고 뛰어라” 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 치시면 주변이 어느새 조용해졌다. 또 직장에서 정년퇴직할 무렵이 되어서 회사 관리자가 뭐라고 하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느냐? 내가 돈 벌려고 회사에 나왔지, 일하러 회사에 나온 줄 아느냐?”며 큰소리로 관리자를 되레 나무랐다.
 큰 고모부는 감정이 풍부하시어 감정표현을 잘 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누구보다 애달프게 우셨고 장례 일을 도맡아 하신 다정다감한 사위였다. 반면 작은 고모부는 남의 이야기를 흠뻑 빨아들이며 들어주는 마력이 있었다. 그냥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그 케(그러게) 말이야” 하면서 빙그레 웃기만 하시는데도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100% 전달된다고 믿으면 사람들은 더욱 신명이 났다. 작은 고모부는 내게도 그랬다.
 내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참담한 심정으로 고모님 댁을 찾아갔응 때,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고모부가 하신 말씀은 단 한마디였다.
 “그래, 개구리가 더 높이뛰기 위해 한번 움츠리는 거지. 걱정 마, 허허허“
 나는 이 빈 말에 속아 오랫동안 엄청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빈말이 아니라, 훗날 예언이었고 나의 현실이 되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작은 고모부는 듣기의 달인이었고, 최고의 달변가였다. 달변이란 말을 많이 하거나 유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은 세상의 이치를 관통하고 치밀한 고민 끝에 나오는 것이리라.


         이동신 수필가 프로필

           시인, 수필가
           손해사정사, 도로교통사고감정사, 보험조사분석사
           ㈜ 삼성화재 본사 재직
           (사) 샘터문인협회 재무국장, 샘터문학 신인문학상(시, 수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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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귀향길 / 이순옥


 큰 아이 초등학교 때다. 남편 사업장을 대구에서 서울로 옮기는 바람에 삼 남매를 시어머니께서 잠시 보살펴 주셨다. 주말에만 아이들을 만나던 어느 해 설 명절에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했다. 입석도 표가 있을지 걱정을 하며 우리 부부는 무작정 서울역으로 나갔다.
 남편은 역 한쪽에 나를 세워두고 사라지더니 용케도 입석표 두 장을 구해서 나타났다. 밀리고 밀리면서 간신히 열차를 탔지만 차멀미가 심했던 나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같이 차에 오르긴 했지만 남편이 어디쯤에 서있는지 모를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겨우 버티고 서있는 내 앞에 남편이 나타났다. 이번엔 좌석표 하나를 들고 와서 자리를 찾아 나를 앉혀놓곤 또 사라져버렸다.
 어디쯤에 당신 좌석을 또 하나 구해서 앉아가고 있겠지 생각했었다. 홍익회 글씨가 선명한 노란 조끼 입은 아저씨가 “오징어나 땅콩 있어요”를 외치며 지나가는 뒤로 남편이 곧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군것질 즐겨하는 나를 위해 또 어디쯤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릴 겸 나타나야할 남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리 바꿔 앉기도 잘 하더니만 복잡한 차 안이라 여의치 않나보다 생각했다.
 이윽고 기차가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내리면서 남편을 찾았지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 밀려가며 역 출구에서 기다리기로 맘먹었다. 다른 방법을 못 찾고 안절부절 한없이 서 있었지만 마지막 사람들 발길이 끊길 때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온갖 상상을 하며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다 보니 어느새 다음 열차가 들어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밀려오는 사람들 틈에서 멋쩍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대전 어디쯤 열차가 잠시 서는 간이역에 내려 담배 한 대 피우고 가락국수 한 그릇 사서 먹다가 그만 기차를 놓쳤다는 것이다. 첫차를 타기 위해 아침을 굶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 무렵 주말마다 열차로 서울과 대구를 오르내리며 간이역에서 가락국수를 먹는 것은 남편에게 빼놓을 수 없는 통과 절차요 즐거움이었다. 멀건 멸치국물에 굵은 국수가닥 몇 개가 둥둥 뜨는 가락국수, 송송 썬 파와 튀김 몇 알이 한가로이 둥둥 떠다니는 가락국수를 기차 놓칠세라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 데는 줄도 모르고 후루룩 마시는 그 맛을 남편은 즐겼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들이 올해 오십이 되었다. 참으로 오래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지만 해마다 설날이 되면 아련한 추억이 가족 술상에 오른다.


         이순옥 수필가 프로필

           시인, 수필가
           용인시 기흥구 거주
           (사) 샘터문인협회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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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아내의 졸업 / 이정재


 오늘 졸업을 했다. 7년간의 결코 짧지 않은 기간에 걸친 대학원 과정의 마지막행사인 박사학위 수여식을 마쳤다. 계절대학원 3년의 석사과정과 야간대학원 4년의 박사과정. 강화 교동도라는 곳에 발령받으면서 시작된 대학원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야간대학원 시작 1년차 때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퇴근 후 섬에서 배를 타고 나와 총알택시보다 빠른 스피드로 달려 대학원 수업에 겨우 도착하면 졸음이 밀려왔다. 졸음과 싸우며 수업을 마치면 밤 10시, 다시 강화도를 향해 달렸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도착하여 강화대교 인근의 순댓국집에서 늦은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고 길 건너 찜질방에서 잤다. 새벽에 깨어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새벽 첫배를 타고 교동도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집에 들려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출근했다.
 당시 아내는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출퇴근을 하였다. 내가 섬을 나가면 아내는 섬으로 들어왔고 내가 섬에 들어오면 아내는 섬을 나갔다. 가끔 반대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는 아내를 길에서 만나 반가운 손 인사를 한 적도 있었다. 얼마나 반갑고 그러면서 미안했는지 모른다. 남편 직장 따라서, 그것도 멀고 먼 외진 섬으로 왔으니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가. 그런데도 아내는 불평 한 번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들꽃이 만발한 강화의 해안 길을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출퇴근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곤 하였다. 그리고 아내는 아침은 물론이고 저녁을 늘 정성껏 챙겼다. 아침은 최소 5첩, 저녁은 최소 10첩 정도로 푸짐하게 차렸다. 대학원 가는 날은 차에서 먹으라고 간식까지 준비해 줬다. 그런 정성으로 남편인 나를 뒷바라지 했다. 내가 이렇게 공부하고 졸업할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이런 헌신과 내조의 힘이 컸다. 그런 와중에도 야무지게 살림하여 재산을 늘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 그리고 시댁의 일가친척의 대소사를 챙기고 화목을 다지는 일에 조금의 소홀함이 없었다. 내가 이런 아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졸업하는 오늘, 아내가 참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졸업식장에서 아내에게 학위모를 씌워줬다. 졸업은 어쩌면 내가 아닌 아내의 몫인지 모른다. 졸업장이야 내가 받기는 했지만 진정한 졸업의 주인공은 아내일 것이다. 오늘은 그간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 학교에서 아내를 졸업시키는 날이라 생각하련다. 그리고 다짐한다. 아내가 내게 하였듯이 나도 아내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며 아내를 섬길 것, 더욱 가정에 충실할 것 그리고 처가에 더욱 더 정성을 다할 것, 그리고 승진을 포기하네 마네 하는 나약한 말을 하지 않을 것 등등.
 그리고 또한 나에게 다짐한다. 이제부터 진짜 공부를 하겠다. 학위 취득이나 과제 해결 등의 부담을 벗어나 오로지 자율과 자유의 자세로서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일에 정진하는 공부를 해나갈 것이다. 육신과 영혼을 함께 자유롭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자율적 탐구의 세계를 여행할 것이라 다짐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있어 그간의 노력과 비용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그간 투입된 적지 않은 본전과 그 이자 등의 부대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아돌아야 함은 당연지사고 학문적 무능 외에 경제적 무능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렇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앞으로의 나의 삶에 더는 아내의 희생과 헌신은 사양하련다. 그만큼 뒷바라지 했으면 됐지 또 얼마를 더 고생하라는 말인가. 눈치, 코치, 염치없는 일이리라.
 “여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어. 고마워요, 이제는 내 뒷바라지 학교에서 졸업하시구려!”


         이정재 수필가 프로필

           시인. 수필가. 아호는 달밭. 충청북도 영동군 출생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경인교육대학원 졸업(영재교육 석사)
           성산대학원 졸업(청소년 교육학 박사)
           (사) 시인들의 샘터문학 회원, 인천 사리울초등학교 재직

 

 

<SAEM NEWS>

 

취재본부장 오연복 기자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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