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문학상 신인상 - 회상, 아버님 사랑했습니다 - 이 수 현 수필가

이수현 시인 - 회상, 아버님 사랑했습니다 -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 시낭송, 박지수 낭송시인

김성기 기자 | 기사입력 2019/11/20 [06:03]

샘문학상 신인상 - 회상, 아버님 사랑했습니다 - 이 수 현 수필가

이수현 시인 - 회상, 아버님 사랑했습니다 -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 시낭송, 박지수 낭송시인

김성기 기자 | 입력 : 2019/11/20 [06:03]
 

▲     ©김성기

  

SAEM NEWS

 

프로필
 
                                                          이수현

시인, 수필가
서예가, 문인화가
사회복지사 2급
경북 포항시 거주
위덕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초등,중등,고등 진로비전 강사
샘문학상 신인상 수상 (수필,등단)
샘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등단)
(사) 샘문학 회원
(사) 샘문인협회 회원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공저>
우리집 어처구니는 시인
<컨버젼스 시집/샘문학>

<수상>
신라미술대전 특선
각종 공모전 다수 입선, 특선

-----------

<수필>

회상, 아버님 사랑했습니다

                                                                    이수현

“아버지 왜 안드세요
얼른 마저 드세요
그래야 빨리 낳아서 집에 돌아가지요“

“아니다
이건 네 엄마 먹어야 돼
네 엄마 먹으라고 남겨 놓았어“

“엄마 오늘 안오세요
맛있는 삼계탕인데 기운내시게 얼른드세요”

“네 엄마는 하루에 고기 열 번 먹어야 돼
저기에 고기 열 근 들어있어“

·................!!·

“네 엄마 못됐다
사람도 아니여 네 오빠 따라 집에 갔어
여기서 자도 되는데 그냥 갔어“

“아버지 여기는 보호자 들이 오래 못있어요
다른 환자들을 불편하게 하니까요“

이것이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대화이다
병실을 들어선 시간은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병실에 계신 여러 어르신들은 벌써 점심을
다 드시고 그릇까지 치우고 휴식중이시다
엄마는 어제 오빠랑 왔었고 다음날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신 후였다.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시고 치매까지
앓게 되어 요양병원에 입원중이셨다.
평소 75년을 사실동안 한 번도 아프다는
말을 못 들었고 병원 신세를 진적이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급하지 않은 성격, 소량의 식사,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 드시고, 채식 위주의
식습관 때문인지 언제나 꼿꼿하셔서 잔병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속이 많이 불편하시다고 구토를 연거푸 하시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셨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보자고 말씀을 드렸다.
근데 한사코 내일 집 가까이 있는 상주 적십자병원으로 가보겠노라고 서울 올라 가시길 극구 마다하셨다.
며칠을 겨우 설득시켜 예약을 하고 진료날짜를 잡아 서울의 큰병원으로 달려갔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CT, MRI등 진단 사진을 찍고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 환우들과 아버지는 농담도 나누시고 즐겁게 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다.

진단 결과 암이란다. 그것도 말기암...,
어쩜 그렇게도 몰랐을까?
사람에게 운명은 몰래몰래 찾아오나 보다. 우리의 육신이 오래도록 정신의 노예처럼 사용되고 정신이 휴식을 취해야
할 즈음 육신의 세포는 이미 기능을 다하고 스멀스멀 다가오는 운명앞에 속절없이
놓이게 되나보다
아버지에게 찾아온 운명은 단순한 노화일까? 아님 고통과 고뇌의 결정체일까?
바로 1년전 아버지의 큰 사위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늘 큰 아들처럼 엄마 아버지를 보살피고 집안 대소사를 챙겨주시던 큰사위를 갑자기 잃고
부재한 현실이 몸안의 세포를 망가뜨렸을까?
아님 혼자 남겨진 딸이 가여워 가슴으로 울었던 상처일까?
부모님은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고깃고깃 눌렀던 슬픔을 드러내지 못해 결국 몸안의 세포를 죽여야만 했던 시간이었으리라

얼마 전 일요일 우리가족들은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따뜻한 햇살 내리는 병실 밖으로 모시고 나와 앞뜰 정자에서 준비해온 족발과 불고기를
프라이팬에 직접 구워 드렸다.
평소 잘 드시지 않던 고기를 어찌나 맛있게 잘 드시던지 두 분이서 많은 양을 뚝딱 해치우셨다. 서로 쌈을 싸주면서 먹여주고 좀 더 드시게 할 요량으로 서로가 챙기시는걸 보면서 두 분의 삶에 드리운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평소 엄마와 아버지는 사소하게 많이 다투셨다. 연세가 75세가 넘으셨는데도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고 삐지시기 일쑤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고 우습게...,
사랑 싸움인지 진짜 미워서 싸우는지 어떤 때는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우리들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었다.

점심을 다 드시고 난 후 아버지는 우리에게 병원에 와서 많이 좋아지신 걸 보여주겠다고 벌떡 일어서시더니 막 걷기 시작했다.

“나 잘 걸을 수 있다 저 오르막길도 올라갈 수 있어”
하시곤 넘어질들 쓰러질듯 막 앞으로 나아가신다

“알았어요 아버지, 아버지 잘 걷네 금방 나아서 퇴원하시겠어요”
아버진 무척 행복해 하셨다.

곧 돌아갈거란 기대감과 엄마에 대한 의지로 한층 기운을 내셨다.
갑자기 아버지는 엄마에게 고백을 하셨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무 걱정마 내가 다 보상해 줄테니...병원에 있는 동안 보고 싶었어”

아버지는 치매가 조금씩 깊어져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여행하셨다.
때론 뜻 모를 말씀을 하셔서 이런 저런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과거로 돌아가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흔적을 더듬고 회상하시며 눈물 흘리시기도 한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이 상상을 넘어 곧 아버지의 현재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이 현재의 삶에 투영하고 싶은 내재된 강한 욕구가 마법처럼 발현 된 것이리라,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는 결국 서울 큰 병원으로 다시 이송되셨다.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일어설 기력조차 없이 눈만 껌뻑이며 고개짓으로만 소통할 수 있었다.
다만 손으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로 아버지의 그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희미하게 잡아주는 손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셨다
고통스럽게 마지막 시간을 부여잡고 모든 걸 놓고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계시리라.

한 달 후 아버지는 여행을 마감하시고 모천으로 회귀하셨다.
원소를 부여받은 모성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씨앗을 남기는 태업을 마치시고 돌아가셨다.
늘 그 자리에 계셨던 아버지는 가셨지만 영혼은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계신듯하다
우리 자식들이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바라보게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하고 힘든 자식을 위해 끝까지 돌봄을 잊지 않고 남겨놓으신 흔적은 정말 부모가 아니고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사랑의 뒷모습일 것이리다.
사랑했습니다. 아버님

 

 

《SAEM NEWS》

 

발행인 이 정 록 회장
취재 본부장 오연복 기자
보도 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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